생존기

이 블로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marsgirrrl 2010. 12. 16. 14:21
학원 수업 시간에 갑자기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게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딸 이야기를 해서 깜놀하게 만든 그렉 선생이 갑자기 '행복한 결혼을 믿지 않는다'며 연설을 시작했다. 
"나는 행복한 결혼을 믿지 않아. 우리 부모도 이혼했고 할머니도 이혼했다고. 행복한 결혼이란 건 없어. 그리고 나는..."
갑자기, 크리스천인데 크리스마스를 안 믿는다고 해서 '여호와의 증인'으로 심증을 굳히고 있는 중국인 제니가 흥분하며 말을 잘랐다.
"성경을 따르면 행복한 결혼은 가능해요! 왜 행복한 결혼을 믿지 않아요?!"
수업 도중 과도하게 흥분해서 떠드는 그들을 보다 지쳐 나도 한마디 했다.
"이봐요, 그냥 원하는 대로 사세요!"

그러더니 그렉 선생은 갑자기 나를 보고 "재니스는 결혼했는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질문을 하는 게 아닌가.
아, 내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영어로 급대답 하는 거라고.
"우리는 13년간 데이트를 해서 서로를 잘 알아요.(모두 경악) 결혼을 했던 안 했던, 그래서 내가 지금 행복했을지 안 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 중이고 어떤 매뉴얼도 따르지 않고 있어요. 우리는 삶을 창조하는 중이죠."(물론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렉 왈, "종교가 있어?"
나 왈, "없어요. 결혼에 대한 어떤 매뉴얼도 없어요. 고수하는 것도 없고요."

그후로 계속 생각나는 문장은 'We're creating our own life'다.
뉴욕에서 와서 서울에서 살던 습관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뉴욕이나 서울이나 바쁘게 돌아다니는만큼 경험을 안겨주는 도시일 테니, 나는 그저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이 도시에 적응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나 자신은? 내 마음의 지도는?
사는 목적은 무엇이지? 장기 여행인가? 뉴욕 박사가 되려고?
발걸음을 멈출 때마다 피어오르는 불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여기가 너의 집이야. 그는 너의 가족이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새로운 기록의 열망이 피어올랐다. 결혼한지 1년 반. 부부로 산 시간은 1년도 안 된다. 이 낯설고 새로운 관계에 대한 시행착오를 블로그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한 번도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혼을 했고(네, 가장 큰 이유는 사랑이죠, 왜 아니겠어요) 주변에는 싱글들 및 커플들이 나름의 삶을 꾸려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나의 삶의 기록이 어떤 세대적 공감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해졌다.

이 블로그는 주로 개인적 쾌락과 그에 따른 개인적 교훈의 시간을 담아두는 장소이다. 사람 수만큼 다양한 취향의 바다를 헤치며 비슷한 생각을 품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대다수 내 또래의 분들은 영화나 음악에 큰 기대를 하며 살지 않는다. 내 세대의 취향 또한 이미 7080 콘서트 같은 거 만들 수 있을 만큼 갈무리가 됐고 그 이상의 진전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 크라잉 넛의 책 소식도 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 대답을 갈구하는 블로그가 될 수도 있다.
허나 아마도 '모두들 어떻게 살고 있어?'가 더 가까울 화제 같다.
계몽이 아니라 공감을 원하는 어른들이니까.
아직 우리에게는 시행착오의 시간들.
혹은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시도.(늙어가는 인생이 얼마나 지루할지 상상이 안 된다)

그래도 기본은 영화와 음악과 뉴욕과 반MB 블로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