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험

<어메이징 레이스> 이번 시즌에 또 한국이 나왔는데

marsgirrrl 2010. 12. 7. 14:17
* 스포일러 있음

가을에 시작한 <어메이징 레이스> 17 시즌이 종영을 앞두고 있다. 미국에 오기전 마지막 거점이 바로, 사우스 코리아. 가는 곳의 특색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 게임 선택에 있어 그 나라에 대한 (미국인의) 스테레오타입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예전 시즌에도 한국이 한 번 나왔는데 그때 미션이 '비무장 지대 한탄강에서 얼음 목욕' '태권도 하기' '산낙지 먹기'였다고 한다. 태그로 정리하자면 - 한국의 스테레오타입은 DMZ, 태권도, <올드보이>(혹은 오징어 종류를 '생'으로 먹는 나라)였던 셈. 한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그다지 흥미로운 코스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엔 좀 다른 미션을 할까 기대했더니.


역시나 인천공항 도착하자마자 DMZ로 이동. 장마비 맞으며 한탄강에서 래프팅하고.(안전요원들이 있어서 경쟁의 재미 반감)


태권도 연습하는 미군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한글로 '천하무적' 비슷하게 써있는 머리띠를 찾아내고


목동 아이스링크에 가서 USA 유니폼 입고 스케이트 타기.(혹은 남대문 시장 가서 인삼주 나르기였는데, 아무도 선택 안함)
 

월드컵 경기장, 한강공원을 찍고 마지막 도착 장소가 웨스틴 조선 호텔 앞에 있는 'Temple of Heaven'이었는데 이거 뭐임?

2010년 <어메이징 레이스>를 통해 한국의 스테레오타입 태그를 업그레이드 하자면 - DMZ, 미군, 한글, 태권도, 스케이트, 월드컵 경기장, 한강, 절(?)로 정리할 수 있겠다. 오세훈의 야심작인 광화문 광장은 아마도 그때까지 광화문이 복원되지 않아 빠졌던 건가?

아무튼 어딜 봐도 이국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직전 나라인 홍콩에서 야경과 음식을 아우르는 다양한 풍경이 등장해서 그런지 더욱 초라해 보이는 느낌. 예전에 한 미국인이 "한국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건 지금까지도 한국전쟁이다"라고 그랬다. 이곳에서 아시아인들을 만날 때야 서로의 국가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지만, 그외 타지역 사람들은 첫 물음이 "사우스 코리아, 노스 코리아?"다. 게다가 올해는 여러 번 전쟁의 위협까지 보도 됐고.

수업 시간에 빈번하게 주어지는 과제 중 하나는 '고향 소개'다. 언젠가는 각국의 세계 공헌에 대해 대화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온갖 잘난척하는 유럽인들의 공세에 맞서 '요즘 한국 영화가 세계에 예술적 영감을 줬다(과거형)' 등의 비교적 모던한 디테일(?)을 내세웠다.(이 때 가장 황당했던 한국 한생은 '삼성'을 두리뭉실하게 극찬한 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스테레오 타입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한번은 선생이 "한국 애들 애버크롬비 좋아하는데 너도 좋아하지?" 그래서 "아니오!!"라고 부인한 적도 있고. 한국 한생들에 대한, 나도 자주 그렇게 믿어버리는 스테레오타입은, 자국의 경험을 너무 보편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국의 유머가 타국 애들에게 먹힐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대중문화의 인지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다.(뉴욕에 오는 애들만 그럴 수도 있다) 자국의 문화만 줄줄 꿰고 있으니 그걸 뛰어넘는 국제적 공감대를 찾지 못해 더 폐쇄적이 된다.

아, 나 또 삼천포.

<어메이징 레이스>를 보면서 서울을 좀 더 다이나믹하고 스펙터클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게임이 뭘까 생각해 봤다. 우리가 보여주기 싫어하는 것들을 우리의 특징으로 인정하는 유머감각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 고층 아파트촌에 정확한 호수로 짜장면 배달하기.
- 차 막히는 러시 아워에 뻥튀기 팔아 돈벌기.(외국인이 뻥튀기 팔면 얼마나 재미있겠어!)
- 고등학교 교복을 교칙에 맞게 완벽하게 갖춰 입기.
-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정해진 룰대로 주문하고 음식 먹기.
- 여러 김치 종류들과 이름을 맞게 연결하기.
- 시내버스와 지하철 환승 5단 콤보하기.
- 마로니에 공원에서 풍선으로 푸들 풍선 만드는 거 배우기.
- 루이뷔통 3초백, 5초백, 7초백 맞추기.(이건 좀 농담)
- 전통에 관한 거라면, 제사상 매뉴얼 보고 맞게 차리기?
- 서울을 벗어난다면, 경주나 부산 혹은 제주도도 좋잖아?
 
스테레오타입을 '기상천외한 도시' '흥미진진한 무질서' 정도로 바꿀 수 없을까?

다음에 <어메이징 레이스>가 또 한국을 간다고 하면 나 좀 조언자로 추천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