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험

these days

marsgirrrl 2010. 11. 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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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온 뒤로 10대 시절이 자주 떠오르는데 오늘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즐겨 듣는 포드캐스트인 NPR의 All Songs Considered에서 특집으로 '내 인생의 노래'같은 주제로 스토리를 모았다.(원래는 엄선한 신곡들을 주로 틀어주는 기특한 방송이다) 여러 사람들이 음악과 진심으로 연결됐던 체험을 짧게 들려주고 그 추천곡을 소개하는 것인데, 모두들 10대 시절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털어놓았다. 오클라호마에서 컨트리뮤직 안 들어서 취향 유별나다고 따당했던 아저씨가 플레이밍립스의 출현과 함께 인생의 대전환기를 맞이했다는 경험담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지루하고 외로웠던 10대 시절을 보내던 중 사운드가든 노래를 듣고 '더럽고 우울한' 사운드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졌다는 언니도 있었다. 요는, 내 10대 시절의 문화환경을 미국 문화가 지배했었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록음악만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추억의 곡들이 종종 튀어나와 따라부르곤 한다. 그 결과 무의식적으로 10대 시절에 대한 향수가 발동했던 것이지. 와, 음악의 힘은 정말 대단하구나.
앞서 말한 포드캐스트 방송에서 DJ와 게스트가 나누는 대화도 대공감이었다. 10대 시절에 어떤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경험, 그 음악이 남친도 되고 여친도 됐던 기억, 그리고 라디오에서 마음에 드는 곡을 발견했을 때 그 환희의 순간.

지하철 지체로 2시간 걸려 맨하탄에서 퀸즈로 돌아오면서 또 생각은 뭉게뭉게.(대중교통 문제로 항의할 곳 없음. 그냥 자연재해 수준으로 받아들여야 함) 고등학교 1학년 때 행복했던 시간 중 하나는 주말에 AFKN 라디오의 아메리칸 탑40를 들을 때였다. 미국으로 치자면 엄청나게 대중적인 취향이었지만 한국에서는 트렌디 팝송을 시의적절하게 듣는 게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일본문화 개방에 앞서 엑스저팬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한국 방송 중에서는 최고로 좋아했던 프로그램이었다. 오기 전에 <배철수의 음악캠프> 20주년을 맞이해 기자간담회를 참석했는데 10대 시절 친구같았던 배철수 아저씨를 만난다고 하니 웬만한 영화계 사람들 만나는 것보다 더 떨렸다. 한때 엽서도 보내고 크리스마스 카드도 보내곤 했는데. 애청자였다고 털어놓았더니 하시는 말씀이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냐?"는 거였다. 당연하다. 그 괴롭던 시절, 마음을 달래주고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던 음악들이 있어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살아남았다는 실존 자체가 '긍정적으로 살았다'는 걸 의미하는 거겠지.

라디오 시절에는 음악과 청자의 만남이 비교적 '운명'과 같았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잽싸게 녹음 버튼을 누르는 것뿐이었으니까. 이런 주술적 관계가 이 세대를 좀 낭만적으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듣던 음악이 90년대 중후반 들어 해석과 비평의 거품을 타다 보니, 음악 듣는 애들이 좀 우쭐해했던 게 사실.
인터넷은 음악을 더 많이 듣게 만들어줬지만 음악에 대한 신화에는 종지부를 찍었다. 운명보다 선택이 중요해지다 보니 고르는 취향에 대한 계몽이 급격하게 이뤄진 거 같고.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방 한 구석에 외롭게 앉아 있는 10대 애들이 마음을 달래는 음악을 들으며 살아남고 있겠지. 언제나 그렀듯 아마 소수일 거야. 대개는 PC방에서 하루종일 수십개의 노래가 흘러가는 환경이 익숙할 테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정말 아이러니다. 지배자들이 많들어놓은 신화가 싫다며,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며, 모든 신화를 파괴하고 음모론도 왔다 가고 누릴 수 있는 건 셀 수 없이 많아졌는데, 반면에 은밀한 낭만이 사라졌다며 한탄하고 있다.
아니면 내가 너무 인생을 원인과 결과에 의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엔트로피를 줄이려는 강박이 너무 심한 걸까? 모든 게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2
뉴욕에 와서 경험한 가장 큰 컬쳐쇼크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다. 햄버거 하나 수준이 아니다. 밥도 먹고 피자 한판도 먹는다. 뭐든지 먹는다. 눈치 안 주냐고? 미국인들은 법에 걸리지 않는 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자유라고 믿는다. 타인은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지 않는 한(음식을 옷에 흘린다든가)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가 전혀 없다. (한국에서는 그러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말하니까 선생이 이해를 못함)

+3
한국 여자 애들의 스타일을 '규수' 스타일로 부르기로 했다. 언제나 본인 및 타인 및 트렌드를 동시에 만족시켜야만 하는 스타일. 튀지도 안 튀지도 않는 중립적인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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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차게 시즌을 시작한 미드들은 거의 시망. 특히 J. J. 에이브럼스의 <언더커버스>는 앞서서 종결 예정. 시청률 떨어지면 바로 광고 떨어지고 윗분들은 바로 형을 집행. 이것이 진짜 자본주의로구나. <하와이안 5-0>가 그나마 재방 시청률이 높다. 내가 버닝하고 있는 건 HBO에 하는 <보드웍 엠파이어>. 마틴 스콜세지와 <소프라노스> 제작자가 만든 마피아의 연대기. 스티브 부세미가 '매력적인 악역'으로 등장해서 좀 적응은 안 된다. 어제부터 좀비 드라마 <워킹 데드>가 시작했는데 아직 못 봤다. 그리고 CBS의 <어메이징 레이스>와 <빅뱅 씨어리> 닥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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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겨울날씨. 딱 좋아하는 공기. 11월은 추억이 질겅질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