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Exit Through the Giftshop by Banksy

marsgirrrl 2010. 7. 27. 13:37

LA에서 빈티지숍을 운영하는 띠에리 게타는 시시콜콜한 일상을 비디오로 기록하곤 했다. 프랑스 고향집을 방문했던 어느날, 그는 사촌동생이 스트리트 아트를 제작하는 광경을 비디오로 찍게 됐다. 게임 '인베이더'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인베이더 캐릭터들을 시내 곳곳에 붙여놓곤 했다. 곧 그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란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사촌의 밤거리 작업을 모두 기록하던 게타는 또 다른 스트리트 아티스트를 만나게 됐다. 쉐퍼드 페어리는 스텐실 작품을 거대한 종이에 인쇄해 곳곳에 붙이고 다녔다. 그리고 훗날 그는 레드와 블루가 섞인 오마바의 지지 포스터 'Hope'로 유명해졌다. 게타는 이외에도 수많은 거리 아티스트들과 스쳐 지나갔다. 결국 그는 급성장 중이었던 아티스트 뱅씨(Banksy)와 인연을 맺었다. 뱅씨의 혁명적인 스트리트 아트에 완전히 반해버린 게타는 계속 그를 쫓아다녔다. 뱅씨는 런던과 LA를 오가며 거리에서 스텐실 작업을 했고, 심지어는 팔레스타인까지 날아가 가자 지구 벽 위에 풍자와 위로를 동시에 담은 작품을 남겼다. 런던 사람들은 곡괭이가 박힌 채 구부러져 있는 전화부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본주의와 전쟁을 비판하는 동시에 기발한 풍자와 아이러니의 여운을 남기는 뱅씨의 작품들은 전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뱅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게타의 비디오 테이프에서만 그의 비하인드 작업 스토리를 볼 수 있었다.

무언가를 기록했다고 해서 그 기록이 저절로 영화가 되진 않는다. 뱅씨의 격려에 힘입어 게타는 어마어마한 양의 기록들을 '예술적으로' 편집해 봤지만 뱅씨가 보기에는 거의 형편없는 작품이었다. 대신 그가 편집의 의무를 떠맡았다. 게타의 열정적인 기록을 가지고 그는 스트리트 아트에 대한 특별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나갔다. 하지만 주인공은 뱅씨가 아니었다. 2000년대를 종횡무진한 유명한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 '희귀한' 기록들이 <Exit Through the Giftshop>의 전반부를 채운다. 그리고 뱅씨가 게타에게 '너도 예술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반전이 벌어진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게타는 그동안 목격한 것을 모조리 따라하며 자신만의 팝아트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아티스트명은 '미스터 브레인워시 Mr. Brainwash'. 앤디 워홀뿐만 아니라 수많은 현대 아티스트들을 패러디한 작품들이 LA에서 공개되자마자 호평을 받았다. 그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공개된 건 마돈나의 베스트 앨범 <Celebration>의 커버를 통해서다. 게타가 유명해질수록 그와 만났던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할 말을 잃었다. 게타가 한 일은, 그야말로 밤거리 '기프트숍'에서 기프트를 얻어서 예술의 해방을 모방한 것이다. 오리지널리티? 현대미술에서 그게 중요해?

<Exit Through the Giftshop>을 촬영한 건 게타이지만 감독은 뱅씨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당연히 '이건 진실?'이란 의문이 따라 붙는다. 풋티지를 제공한 당사자가 자신을 사기꾼으로 모는 영화에 동의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엄연한 사실이란 사실을 게타가 인정했다. 그렇게 보면 '미스터 브레인워시'라는 예술가 자체가 뱅씨의 프로젝트처럼 보인다. 올해 <타임>지가 선정한 창조적인 인물 100위 안에도 진입한 뱅씨는 현재의 젊은 예술가로 계속 명성을 얻고 있다. 그가 스텐실한 벽화는 경매에서 엄청난 돈을 받고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뱅씨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없다. 몇 개의 광고와 블러의 <Think Tank> 커버를 돈 받고 작업하긴 했지만 그는 자신의 스트리트 아트를 매매하지 않는다.(나중에 그는 상업적인 광고에 연루된 걸 반성했다) 결국 <Exit Through the Giftshop>는 마치 스트리트 아트를 전설화하는 것처럼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현대미술 자체를 비웃으며 끝난다. 별 의미도 없는 예술이 엄청난 것인양 부풀려지고 사람들은 거기에 막대한 돈을 투자한다. 현상 자체가 우습고, 나아가서는 현대 미술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무리들 자체가 우스워진다.
어쩌면 박찬욱이 히스테릭하게 반응하는 '진정성' 또한 이런 맥락일지 모른다. 영화에 진정성이 없다고 욕하는 무리들, 영화의 매커니즘을 알고나 떠드는 것일까? 그리고 '진정성이 있는' 영화에 높은 값을 매기는 사회, 그것은 진짜 진정성일까? 그 가치는 무엇일까? 이를 테면 앤디 워홀은 미술의 '진정한' 혁명가일까, 아니면 '무의미한' 사기꾼이었을까? 거기에 진정성은 대체 어디 있나?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뱅씨의 작품에 대해 여러 각도로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여전히 존재를 숨긴 채 '순간의 예술'을 작업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아마도 그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충분히 혁명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예술이 할 수 있는 건 그뿐이다. 개개인이 이뤄내야 할 혁명 혹은 혁신을 예술가에게 미루지 말라. 그들의 업은 단지 꽉 짜여진 현실의 숨을 틔워주는 비상구 같은 것일 뿐이니.

<Exit Through the Giftshop>은 현대미술이 여기저기서 창궐하는 뉴욕에서 더 의미심장한 영화다. 한국의 편의점만큼 많은 갤러리들, 그곳의 큐레이터들이 시장의 블루칩이 될 차세대 스타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자의식적인 콜라주와 오브제들의 행간 사이에 그들이 기대한만큼 혁명적인 움직임이 숨어 있을까? 글쎄, 모든 게 과잉 해석으로 보인다. 뱅씨의 말에 따르면, 이 모든 건 사람들이 잡지를 너무 많이 읽으면서 트렌드를 걱정한 나머지 마비되어 버린 결과이다.(Because so many artists, they worry about what trends are happening in art and design and street art, they read too many magazines, and they are too wrapped up in everything; they’re paralyzed) 팝아트는 모방에 모방을 거듭한다. 그러고 보면 모방이야말로 진짜 현대 미술일지도. 이 무의미한 게임같은 예술계에서 존재감을 지속시키는 방법은 멈추지 않고, 꾸준히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것같다. 그러니까 오래 가는 게 강한 건가.
현대미술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킨다는 가치가 부각되긴 하지만, <Exit Through the Giftshop>는 다큐멘터리로서 꽤 잘 만든 영화다. 뱅씨의 이전 작품들 및 그의 감독으로서의 재능 또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 선댄스와 베를린에서 공개됐으니 아마도 부산 영화제쯤 가지 않을까?


+ 희귀한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브리스톨 출신으로 학교 다닐 때 3D란 친구가 미국에서 왔는데 스프레이 낙서를 하고 다녔다고. 그래서 그래피티에 호감을 갖게 되었으나 3D는 곧 이에 질려버리고 음악의 길을 선택. 매시브 어택을 만들었다고 한다.-_-

+ 이거슨 전철 타고 가다 찍은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