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hot shot

이클립스 사운드트랙에 대한 단상

marsgirrrl 2010. 7. 23. 23:11

뱀파이어팬과 인디팬의 접점?


<이클립스> 사운드트랙 수퍼바이저 알렉산더 팻사바스는 '메인스트림'에 '인디 뮤직' 트렌드를 만든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음악 자체가 잘 나서였겠지만, 그녀가 아니었다면 스노우 패트롤이나 뮤즈가 미국에서 이만큼 성공을 거뒀을까 의심된다. 스노우 패트롤의 'Chasing cars'가 <그레이 아나토미> 두번째 시즌 마지막에 울려퍼질 때만 해도 그들의 앨범 판매량은 2000장 정도였다. 피터 비요른 앤 욘의 'Young folks'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된 곳도 <그레이 아나토미>였다. 오죽하면 <그레이 아나토미> 2시즌 앨범은 그래미 시상식 최고 모션 픽처 앨범 후보에도 올랐다. <The O.C>도, <가십 걸>에도 팻사바스의 이름이 올라있다. 그리고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참여하면서 그 이름은 전설이 됐다.

문제는 <트와일라잇>의 팬층과 그녀가 사랑하는 인디뮤직의 팬층이 거의 물과 기름 수준이라는 것. <트와일라잇> 1편 때만 해도 취향의 간극은 거의 없었다. 작가 스테파니가 사랑하는 뮤즈가 참여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장르는 파라모어, 린킨파크 같은 팝펑크였다.(이제 내 귀에 애들은 '팝'이여) 그러나 <뉴문>부터 상황이 역전. 어장관리녀의 어장관리에 심란함을 더하기 위해 감성이 빛나는 인디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 데스 캡 포 큐티가 주제가가 공개되면서 <반지의 제왕> 시대처럼 나눠져있던 음악부족들이 대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인디 안경족 "데스 캡 포 큐티 실망이다. 어떻게 이런 쓰레기에 참여할 수가 있냐. 인디음악계의 수치다."
패티슨 뉴비족 "이건 뭥미? 애네 누굼미? 파라모어 어디 갔나연?"
제이콥 뉴비족 "뭐야, 이거 무서워. 음악들이 너무 우울해요."
이런 반응이랄까.

리스트는 황홀했다. 뮤즈는 기본 사양, 킬러스와 오케이고는 그렇다 쳐. 라디오헤드 톰 요크가 웬말. 그리고 그리즐리 베어, 본 이베, 세인트 빈센트, 블랙 레벨 모터사이클 클럽 등등. 바로 그 당시 주목받던 인디밴드들의 종합선물세트였다.

이제는 어차피 인디밴드들이 <나일론>같은 잡지에서 곤조있는 패션 리더처럼 다뤄지는 시대.(여기 <나일론>은 거의 10대 잡지. 절대 심각하지 않음) '어디 한 번 뽑아볼까'라는, 인형 뽑기 기계의 인형들처럼 대중 앞에 공개되고 있다. 이런 10대 소비자들 앞에 개봉 전에 짜쟌 하고 공개된 <이클립스> 사운드트랙.
그냥 밴드명만 나열해보자.
뮤즈(기본 사양), 메트릭, 브레이버리, 플로렌스 앤 더 머신, 시아, 판팔로(애네는 사바스 특별 추천인데 음악 훈늉), 블랙 키즈, 데드 웨더, 벡 & 배드 포 래쉬즈, 뱀파이어 위켄드, 엉클, 이스턴 컴퍼런스 챔피온즈(애네도 사바스 특별 추천), 밴드 오브 호시스, 씨로 그린(날스 버클리 보컬). 배틀즈.

그리고 또 종족간의 반응.
인디 안경족 "우와, 다 새 곡들이잖아! 이거 사야되는 거야? 이걸로 밴드들 살림살이 좀 나아졌나?"
제이콥 뉴비족 "마지막 하워드 쇼어의 '제이콥스 테마' 진짜 쩔지 않나연? 근데 뱀파이어 위켄드 애네 좀 귀엽넹^^. 다음에는 파라모어 데려오면 안될까요?"

인디 안경족에 가까운 나는, 잽싸게 앨범을 특템하여 아이팟으로 들었다. 그것도 아이팟 창에 <이클립스> 커버가 뜨는 걸 누가 볼까봐 쪽팔려 하면서 들었다. 대개 이런 앨범은 별거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럼 그렇지'라며 고소한 웃음을 흘리곤 하는데, 오마낫, 플로렌스 앤 더 머신, 블랙 키즈, 그리고 씨로의 노래만으로도 '어머, 이건 사야해'다. 뮤즈만 빼놓고 거의 다 훌륭하다. 좋은 인디 컴필레이션이라 생각하며 듣다가 하워드 쇼어의 스코어 '제이콥스의 테마'가 나와야 <이클립스> 사운드트랙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제이콥스 테마는 과감히 삭제.

팻사바스는 데드 웨더나 블랙 키즈의 음악 수록을 놓고 "<이클립스>는 액션영화라서"라고 말하며 '적합함'이 기준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음악을 들어보니 이게 어디가 액션용 배경 음악? 더 나아가서는 이런 음악에 어울리는 액션이라면 꽤 스타일리시 하겠다는 생각에 <이클립스>를 볼까 하는 욕망까지 일렁인다. 그러나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비공식상 '18세 이상 관람불가'. 여자 어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지만 그래도 다 늙어서 보는 건 심하게 낯뜨겁다.

사실 이 앨범을 놓고 든 생각은, 여기 '인디 음악 스놉(snob)'들이 거만 떠는 것과 비슷하다. 아니 뭐, 미국 비교할 거 없고 한국의 마니아 애들만 데려다 놔도 적절한 예가 된다. 미지의 음악 찾아서 공유하는 애들은 항상 추상적인 소유욕에 불탄다. 취향과 교양 레벨을 동일시 하는 종족이므로, 감히 대중음악이나 듣던 아무개가 어느날 친구 싸이에서 고운 인디음악을 발견하고 '내 취향이야'라고 말하는 현상을 굉장히 경멸한다는 말이다. 혹자는 이걸 '폐쇄적'이라고 말하는데, 어쩔 수 없다. 세상을 음악을 통해 배운 애들이므로 음악이 곧 그들(나를 비룻)에겐 종교인 셈이다. '성경연구'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우연히 발가락만 담갔다가 다 아는척 떠드는 꼴을 봐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메리칸 아이돌>이나 보며 감동 먹는 애들이 이 레벨에 도전해? 선만 그을 줄 아는 애들이 입체파 그림을 놓고 '뭐야 선만 그으면 예술이야, 나도 그리겠네, 푸하하' 이런 무식함이 느껴진단 말이지. 이건 뭐, 일종의 음악 보수주의자려나. 마이너리티의 자존심 문제도 있다. '메이저'를 거부하고 그 대안으로 '인디'의 울타리 안에서 놀고 있는 가운데, 돈 좀 많은 애호가가 나타나서 그 자산들을 싹쓸이 해 메이저리티의 유흥거리로 던져 놓은 것이다. 게으른 부잣집 애들이 늘 그런 식으로 없는 자의 마지막 열정까지 갈취해 간다는, 개인적인(혹은 소수의) 삐딱한 시선.

아무튼 통일이 힘겨운 음악 세상에 알렉산드라 팻사바스가 뱀파이어계 절대반지를 던졌으니. 벡도 모르는 10대 애들이 '이 아저씨 구려'라고 말한다면(사실 들어본 적은 없음) 어떻게 견뎌야 하나. 씨로의 노래가 저렇게 아름다운데도 '제이콥의 테마'만을 반복 청취하는 애들과는 대체 어떤 대화를 나눠야한단 말인가. 그때그때 주목받는 인디음악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십걸> 쪽도 마찬가지.
  
조커교(joker-ic)답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와이 소 시어리어스'가 정답. 뮤지션들이 영화 가지고 양질의 신곡을 만드니 반갑고, 좋은 밴드들 세상에 알려지니 다행이고. 뮤지션이 뭐 신성불가침의 존재들도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음악 파는 애들이잖아.  좋으면 듣고, 아님 말고!
음악을 사랑하는 방식을 더 가볍게 바꿔야 한다는 개인적인 당면 과제와 함께 던져진 흥미로운 시추에이션.(솔직히 90년대 애들이 '키노'식으로 인디 음악을 숭배하는 것도 더이상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 사실은 이런 혼란의 상황을 기사에 반영하고 싶었으나 클라이언트의 요구 때문에 그럴 수 없어 걍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 알렉산드라 언니가 운영하는 촙솝레코드의 블로그. 자체 밴드들뿐 아니라 주목할 만한 밴드들이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