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인터네셔널 학원의 월드컵 토크

marsgirrrl 2010. 6. 17. 09:25

월드컵이 시작되자마자 월드컵 토크가 수업 시간을 장악해 버림.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관계로 대화가 흥미진진.
대체로 유럽 친구들은 축구 강국이라는데 대단한 자부심을 보이는 중.(그러나 독일만 빼고 허덕이는 현실)

* 한국-그리스 대회 전 금요일
그리스 깃발을 지참해 기념촬영까지 한 그리스 언니 : 금요일에 어떻게 되나 보자구!
버벅거리는 나 : 우리가 이길 것임.(영어로 시니컬한 표현이 더 어려워서 스테레오타입 코리안처럼 연기하는 중)
그리스 언니 : (속삭이며) 그런데 우리도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 안해. ㅋㅋㅋ

* 일본-덴마크 경기를 옆교실에서 방영
일본 경기란 말에 옆교실로 달려간 유리코 및 일본 학생들 : 재니스, 우리 경기 보는 사진 좀 찍어줘.
버벅거리는 나 : 그런데 누가 제일 유명한 플레이어임?
유리코 : 몰라. 사실 월드컵이 시작한 줄도 몰랐고 오늘 일본 경기가 있는 지도 몰랐어.
버벅거리는 나 : 그럼 축구는 좋아함?
유리코 : 아니 그냥 일본 경기라 응원하는 거야.
(수업이 시작했으나 돌아오지 않는 유리코. 잠시 후 믿을 수 없는 일본의 승리로 학원이 시끌시끌)

* 스페인 경기를 앞두고
스페인인 까를로스에게 버벅거리는 나 : 나 토레스 좋아해.
까를로스 : 나 토레스 싫어. 자비가 최고야.
버벅 나 : 귀여워서 질투하는 것임?
까를로스 : 아니야. 토레스보다 자비가 뛰어나.
* 다음날 스페인 패배 후
버벅 나 : 스페인이 지다니 믿을 수 없다!
나를 보며 까를로스 : 토레스 때문에 졌어!
버벅 나 : 걔가 뭘 잘못 했는데? 득점을 못 해서?
까를로스 : @$@@$%^& (안들림)
옆에 앉은 독일인 소녀 : 어차피 독일이 이긴다니까.(으쓱)

* 브라질-북한 경기를 앞두고
버벅 나 : 브라질과 북한이 경기를 한다니 정말 이상한 상황이지 않나요?
선생 : 그러게, 두 나라는 정말 극과 극인 거 같은데.
한국 친구 : 브라질을 응원해야지.
버벅 나 : 그래도 북한을 응원해야하지 않을까?
한국 친구 : 어째서?
버벅 나 : 북한이 이기면 정말 흥미진진해질 것 같아서.
선생 : 정말 그럴 것 같네.

* 스페인-스위스 경기 후
(옆교실의 요상한 신음소리들에 이어) 학원의 유일한 스위스인 학생이 교실 문을 열고 : 1:0으로 스위스가 이겼어요.
선생 : 정말? (애들은 보고) 나 스위스계거든.

* 축구를 마냥 쳐다보는 태국 친구들과
버벅 나 : 근데 태국에서 축구가 인기 스포츠야?
태국 훈남 : 아니.
버벅 나 : 태국 축구를 한 번도 본적이 없어.
태국 훈남 : 우린 축구를 거의 안해.

* 마찬가지 터키 소녀
버벅 나 : 근데 터키는 이번에 왜 월드컵 진출 못 했어?
터키 훈녀 : 몰라. 우리도 축구 잘 하는데.
버벅 나 : 예전에 잘 생긴 축구 선수 본적 있는데.
터키 훈녀 :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유명한 선수를 보러 외국에서 오고 그래. 근데 난 영국팀이 제일 좋아.
버벅 나 : 나는 스페인이랑 독일. 그리고 아프리카.
터키 훈녀 : 아프리카? ㅇ_ㅇ

* 브라질-북한 이후 브라질 아저씨와
버벅 나 : 어제 경기 정말 인상적이었죠?
브라질 마리오씨 : 우리가 너무 못했어.
버벅 나 : 나는 첫부분은 못 보고 마지막 부분만 봤는데 북한이 골 넣을 때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한국인이라 그런가?
브라질 마리오씨 : 북한은 정말 잘 싸웠어. 그들의 경기는 정말 인상적이었어.
버벅 나 : 근데 호나유징유는 어디 갔어요?
브라질 마리오씨 : 글쎄. 나도 그가 왜 발탁이 안 됐는지 모르겠어.

* 이탈리아 경기를 기다리는 이탈리아 소녀들
선생 : felix란 바에 가면 경기를 볼 수 있어. 근데 상대가 누구야?
이탈리아 훈녀들 : 파라과이요.
선생 : 잘 하는 나라야?
이탈리아 훈녀들 : (거만) 글쎄요.
선생 : 어떤 선수를 제일 좋아해?
이탈리아 훈녀 1 : 델 피에로!(실제 발음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음)

* 발음 수업 시간(미국 경기 후)
선생 : who is winning the world cup? 으로 억양 연습 해보자.
버벅 나 : not usa.(일동 당연하다는 웃음. 움하하하)
선생 : 아니거든.
버벅 나 : 네?
선생 : not the usa라고.
버벅 나 : 헷.

+ 월드컵 관련 코멘트
4년마다 보는 바람에, 볼 때마다 애들이 퍽퍽 나이를 먹어서 깜놀.
모스트 훼이보릿 독일의 프리드리히씨는 더 이상 청년이 아닐세. ㅠ_ㅠ 그러나 이제는 토레스가 있으니까.
나이스 바디인 가나의 아사모아 기안도 나이든 티가 나고, 귀엽던 아르헨티나 메시는 이젠 귀엽지가 않군요.
북한 경기에는 정말 별 관심 없었는데 북한이 골을 넣을 때 울컥 했음. 한민족이라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고, 포기 안 하는 그 정신에 감동받은 게 아닐런지.
그런데 미국에서 축구는 비인기 종목이라서 미국 경기만 중계해줌. ㅠ_ㅠ 축구를 사랑하는 라틴 아메리카 방송으로 시청 중. 스페니시 중계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왠지 더 흥겨움. 특히 골을 넣을 때마다 한 번의 호흡으로 '고오오오오오오오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울'이라 길게 외치는 게 포인트.
그러나 심심하면 '골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지만 쉽게 열리지 않는군요' 등의 클리세 해설을 패러디해 스스로 중계함.
* 지금까지 베스트 유니폼 : 가나(화이트)
*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 : 그리스 선수들의 라스트 네임. 카르키아스, 세이타리디스, 파차초글로우, 스피로포우로스, 모라스, 파파도포우로스, 토로시디스, 키르기아코스, 파파스타토포우로스, 카라고우니스, 니니스, 카초우라니스, 프리타스, 사마라스, 게카스 등등. 축구하다가 그리스 철학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 중계하는 분도 이름을 몇 초 이상 발음해야해서 힘들어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