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28

Blur @Music hall of Willamsburg

2003년 [Think Tank] 앨범이 블러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데이먼 알반은 기억도 잘 안 나는 프로젝트들을 작업하며 생존 소식을 알렸지만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진 못했다. 작년에 나온 솔로 앨범도 별로였다. 흑인음악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거기에 아기자기한 일렉트로닉 비트와 노이즈를 얹는 그의 방법론은 좋게 말해 ‘고릴라즈’의 B트랙 모음 정도로 들렸다. 그러니 블러가 재결합을 해서 새 앨범을 낸다고 했을 때 그리 큰 기대를 하진 않았으나 싱글 ‘There are too many of us’를 듣고 마음이 바뀌었다. [13]과 [Think Thank] 시절 블러 식의 멜랑콜리 팝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는 곡이었다. 냉소와 풍자로 무장한 쿨하디 쿨한 음악을 들려줬던 청년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팝 ..

음악다방/live 2015.05.02

뉴욕 지하철과 독립적 인간

누군가 뉴욕은 '모던'과 '클래식'이 공존해서 매력적인 도시라고 했다. 관광객 넘치는 맨하탄 중심부를 빠져나와 그리니치 빌리지의 고즈넉한 길을 걸을 때면 그런 매력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만들어진 시기의 미학을 뽐내는 듯한 아름다운 건물들, 가로수가 풍경의 일부가 되는 잘 정비된 보도, 여유로운 걸음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오래된 건물 사이에 막 지은 현대식 건물이 생뚱맞게 끼어 있다면 더 흥미로운 산책길이 된다. 우디 앨런의 흑백영화에나 나올 법한 뉴욕의 모습이 그나마 박제되어 있는 듯한 공간이다. 그 거리를 지나 지하철 역으로 내려오는 순간, 집에 돌아온 신데렐라처럼 뉴욕의 마법에서 깨어난다. 자랑스럽게 110년 역사를 기념하는 포스터를 붙여놓은 뉴욕 지하철 역. 110년이 지나는 동안 그..

뉴욕 모험 2015.03.23

문 잡아주기 강박증

뉴욕에 온 뒤 여러가지 문화적 충격을 느껴봤지만 그 중 하나가 문 잡아주는 문화. 그게 더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미국 애들이 공공 장소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 개념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타인이 문 앞에 올 때까지 문을 잡아주는 것에 대해선 굉장히 민감해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상점을 들어가거나 나갈 때 문을 잡게 됐는데 바로 뒤에서 따라오거나 앞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가 지나갈 때까지 문을 잡아주는 게 예의다. 근데 그거 말고는 또 딱히 여기 애들 행동거지상 '예의'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 뭐, 상류층 쪽은 다를 수도 있겠으나 서민들이 의도치 않게 부비부비하며 살아가는 공간에서는 조금만 닿아도 '아임 소리' 해야하는 등 주로 사과할 일이 많지 남 배려해주는 경우는 별로 없어서. 그..

뉴욕 모험 2012.08.04

두 개의 케이크

오늘은 먹을 거 이야기. 따뜻한 봄날에 뉴저지에 벚꽃놀이 갔다가 맨하탄을 거쳐 귀가하게된 부부는 오랜만에 된장질을 해보자며 명품샵들 모여있는 거리인 매디슨 애비뉴로 차를 돌렸다. 요즘 뉴욕 온 투어리스트들이 너도 나도 다녀간다는 그 곳의 이름은 LADY M. 뉴욕의 쿨한 가게들은 쿨한 척하려고 간판을 안 보이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곳의 간판도 그리 친절하진 않아 잠깐 헤맸다.테이블이 10개도 안 되는 작은 가게라 줄 서는 건 기본. 도착했을 때는 마침 테이크아웃과 스테이 줄이 뒤섞여 대혼란 중. 반 이상이 아시아 사람들. 아시아인들이 특별히 케이크를 좋아하는 것인가.사실 나는 케이크 팬이 아니다. 예전에 오사카 여행 가려고 맛집을 뒤졌더니 사람들이 죄다 케이크 가게만 추천. 서양골동양과자점이라도 꼭..

뉴욕 삼천포 2012.05.19

Pulp@Radio City Hall

살다보면 가끔씩 남들이 비웃을지 몰라도 결연히 행해야 하는 일이 있다. 이를테면 2012년 펄프 콘서트가 그렇다. 셋리스트는 거의 Different Class의 곡들. 추억을 되새기는 디너쇼 타임의, 한 물간 전설의 밴드가 등장하는, 전혀 쿨하지 않아 보이는 상황이지만 나는 펄프의 공연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오픈 당일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인터넷 예매 전선으로 향하고 있었다.왜냐하면 펄프야말로 '너와 나의 20세기'이니까. 술에 취해 바 한 가운데서 '디스코 2000'과 '커먼 피플'의 스텝을 밟았던 그 20세기말.데보라는 그 예쁜 가슴을 가지고 왜 그렇게 막 살아야 했는지, 조각 전공하러 영국 온 그리스 소녀는 어쩌다 커먼 피플과 자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는지, 모든 게 가소롭고 마땅찮고 웃기지도 않았..

음악다방/live 2012.04.13

독립문과 퀸즈

미국에 오기 전 살았던 동네는 독립문 건너편인 '무악동'이었다. 어머니들의 처지로 인해 독립을 할 수밖에 없어진 나와 현재 신랑은 보증금 500만원을 들고 방 두 개짜리 월세집을 보러 다녔다. 내 직장은 중림동이었고 신랑은 충무로로 출근하던 때였다. 서대문, 충정로 등지를 돌다가 마지막으로 보자며 향한 곳이 독립문이었다. 걸어올라가기 벅찬 험한 산고갯길에 다세대 주택들이 다닥다닥 모여있었다. 그런 험난한 곳에서조차 우리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최선의 공간은 하수구 냄새가 빠져나가지 않는 반지하 방이었다.우리는 하루종일 돌아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곤란해하고 있었다. 그때 중개인은 마치 최후의 카드처럼 "이사 날짜만 미루면 괜찮은 집이 있는데"라며 말을 건넸다. 중개인이 데려간 곳은 독립문 역에서 불..

sense and the city 2012.04.07

먹는 게 곧 사는 이야기가 되는 삼십대 중반

언젠가 오피스메이트가 물었다. "언니는 휴일에 뭐할 거예요?" 몇 개의 식당을 검색 중이던 나는 "뭐, 맛있는 식당에 가거나, 집에서 맛있는 걸 해먹을 것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의 반응. "언니는 만날 먹는 이야기만 하네요." 쿠쿵. 뉴욕 온지 2년도 채 안 됐는데 10년째 살고 있는 듯한 맛집 리스트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고, 하물며 맨하탄 어디어디가 좋다며 추천해주기도 여러번. 한국 식당의 여러 음식들을 먹어보며 반도의 오리지널리티를 따라갈 수 없다며 혀를 차는 건 이제 일상적인 투덜거림이다. 주말에는 꼭 마트에 가서 신기한 것들 장을 봐와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대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영화와 음악에 푹 빠져서 새벽녘에 키보드 두들겨대던 열정의 오덕녀는 지방이 덕지덕지 붙은 몸을 이끌고 그 ..

뉴욕 모험 2012.02.05

[cheap summer] central park summerstage

여름 지나간 지는 오래됐지만 기록하려고 했던 건 기록해두고 지나가자. 이번 주말은 쌩쌩 불던 바람이 좀 잦아 들고 모처럼 햇빛 내리쬐는 날씨. 요즘 들어 많이 듣는 말은 '뉴욕은 역시 가을'이라는 것이다. 어디서 유래됐는지 확실치는 않지만(아마도 위노나 라이더와 리차드 기어가 나왔던 옛날옛적 영화 때문이긴한데) 많은 지인들은 뉴욕은 가을이라며 뉴욕을 가려면 가을에 가야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나로선 센트럴파크 낙엽보다 설악산 단풍이나 바라보면서 수제 막걸리에 감자전이나 먹는 게 더 운치있다고 생각하지만. (엉엉 먹고 싶다. 설악산 자락의 도토리묵과 백숙) 두 해 가까이 살아본 결과 나는 뉴욕의 여름이 사계절 중 제일 좋다. 가장 큰 이유는 야외에서 하는 '무료' 콘서트가 매주마다 몇 건씩 벌어지기 때문이..

뉴욕 모험 2011.10.09

[taste of NY] Cheap summer - vareil

뉴욕에 대한 수많은 가이드가 넘쳐나는 가운데, 사람들은 기자 출신이라고 말하면 너무도 쉽게 "뉴욕에 대한 책을 쓰세요!"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출판사를 소개시켜줄 것도 아니면서. 후배가 쓴 멋진 책 '어쨌거나 뉴욕'은 아직 못 읽어봤다. 사진도 별로 안 찍어서 어설픈 내 사진들로 이미지 컷 대신한, 정말 '글빨'로만 뉴욕 이야기를 담은 여행기다. 내가 아는 글 잘 쓰는 사람 5순위 안에 꼽힌다. 정확히는 아마도 '뉴욕 삽질기'일 거라 예상한다. 저자 사인본이 한국 다녀온 지인을 통해 배송 중. 쇼핑 링크 때문에 잠깐 검색해봤더니 그새 평들이 많이 업데이트 되었네. 이렇게 사랑받는 책이라니, 부럽구나, 숙명아. 내가 만약에 뉴욕에 관한 책을 쓴다면 아마도 저렴한 체류비로 한량처럼 지내는 비법에 대해 썰을 ..

뉴욕 모험 201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