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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식

감각 좋은 어른들은 유행 최전선에서 소비되는 상품과 태도를 빠르게 흡수해 나라 안에 풀어놓는다. 반짝반짝 윤기 나게 닦인 공간과 사람들. 쿨하고 힙한 실존들. 선진국 만큼이나 세련된 허위의 자부심. 그 빛 좋은 개살구같은, 뉴욕풍, 도쿄풍, 런던풍, 파리풍, 베를린풍, 북유럽풍 가상 현실이 현실을 대체하며 마음의 위안을 주는 현재.20대 성장을 거쳐 30대로 살아가는 동안 내가 한 일은 이 빛 좋은 자위 세계 창조에 동참한 것이다. 적어도 어떤 이들은 생각만큼 구린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환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 현실은 메타 현실 속에 꼭꼭 숨어버린 지 오래다.구린 현실 따위야 누군가는 열심히 뜯어 고치고 있을 터라 생각했지만 그것이야말로 거대한 착각이었다.세상에 던져진 내가 했어야만 하는 일은 비루..

생존기 2014.04.18

2014 오스카 예측

3월 2일 일요일 저녁 오스카 시상식을 하루 앞둔 오늘. 오스카 역사상 가장 접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 대해 예측하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다. 오늘 안 하면 늦는다고. 골든글로브가 끝나면서 각종 매체에서 주요 후보작들의 오스카 프로모션 시작. 투표자들은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약 9000명의 멤버들. 통계상 60대, 백인, 할아버지,의 의견이 주류가 된다. 다른 매체의 의견을 엮어 뜯어보고 싶지만...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에 개인적인 스타일 점쟁이 예측으로 나감. 이미지도 생략. 작품상은 '노예 12년'과 '그래비티'의 중 하나로 압축되는데 '노예 12년'에 건다. 한국에선 잠잠한지 몰라도 스티브 맥퀸의 '노예 12년'은 토론토 영화제 첫 공개 때 난리가 났던 작품이고 훌륭한 영..

극장/by released 2014.03.02

블로그와 원고료

나는 글을 쓰며 먹고 살았던 사람이고 지금도 수입의 일부는 글쓰기에서 나온다. 글만 써서 꾸준히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언제쯤 가능할 지는 알 수 없다. 이는 내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고 대가가 적은 원고료의 문제이기도 하다. 처음엔 영화와 음악에 대한 글이 메인이었다. 한때 이 영역에 몸 담았던 기자들이 다소 비슷한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원고 청탁을 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내가 글쓰는 범위도 늘어났다. 대부분은 원고료를 안정적으로 주는 매체(다른 말로는 '대기업 사보'라고 부르는)에 몸 담고 있다. 이 분야에선 필요한 것을 빨리 간추려서 빨리 정리하는 테크닉이 중요하다. 그렇게 나는 점점 테크니션으로서의 글쟁이가 되어간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는 꽤 됐다. 다음에서 블로그 초기 형식인 '칼..

카테고리 없음 2014.03.02

맥커너상스란 무엇인가

* 매거진 M 원문 기사맥커너히식 나의 삶을사는 법 1992년영화 데이즈드&컨퓨즈드>의한 장면.선배 역의 매튜매커너히가 10대꼬마들을 앉혀 놓고 말한다.“네가 하고 싶은것을 해.나이가 들수록따라야 할 규칙이 더 많아져.결론은 계속 너의삶을 살라는 거야(JustKeep Living).” 그후20여 년의세월이 흘렀지만 이 대사는 여전히 매커너히의 영혼을밝히는 주문으로 작용한다.로맨틱코미디의왕자님으로 군림했던 10년전까지만 해도 그는 삶을 잘 살고 있는 듯했다.웨딩 플래너>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풀스 골드>같은클리쉐로 가득 찬 로맨틱 코미디에 계속 캐스팅됐고,악평이 난무했던액션 영화 사하라>는셔츠를 벗은 매커너히를 당대 최고 섹시 스타로 만..

극장/by released 2014.03.01

Inside Llewyn Davis에 관한 수다

* 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 + 1961년. 포크 뮤직 라이브 하우스인 가스라이트 카페. 이제 막 솔로 뮤지션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루윈 데이비스가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고전 포크송인 'Hang me oh hang me'를 끝내고 그는 말한다. "아마 이전에 들어본 곡일 겁니다. 포크 뮤직은 절대 새롭지도 않고 절대 낡지도 않는 음악이거든요." 무대에서 내려온 뒤 손님이 찾아왔다는 전언에 뒷문으로 나가니 덩치가 큰 남자가 남부 말투로 말을 건넨다. "말이 너무 많다"며 르윈에게 주먹을 날리는 남자. 그의 정체는 마지막에 밝혀진다. +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의 1961년 겨울. 중산층 동네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 사는 교수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집을 나서는데 문틈 사이로 ..

극장/by released 2014.02.02

NYFF 51 백 만년 만에 정리

백 만년 전에 갔던 것처럼 멀게 느껴지는 올해 뉴욕영화제.베를린, 칸, 베니스, 토론토에서 인정받은 몇 편의 수작들만 가져오기 때문에 상영 편수는 그리 많지 않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처음 공개되는 미국 영화들. 토론토 지나 뉴욕 영화제 거쳐 화제에 오른 영화들이 오스카 후보들이 되기 때문에 미국내 주목을 많이 받는 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 거 같고, 각고의 노력 끝에 유치 성공한 의 인기로 같이 주가가 올라감. 이듬해는 를 가져와 권위가 더 올라감. 올해는 이미 토론토에서 입소문이 난 영화들이 대부분이라 라인업이 다소 약했다. 가 올해 뉴욕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던 영화들. 트윗을 카피 앤 페이스트 하며 기억을 더듬음. - 뉴욕영화제 폐막작으로 처음 공개된 스파이크 존즈의 [HER..

극장/by released 2013.11.26

언니들 음악 풍년

여자 가수들이나 여자 보컬 밴드가 쏟아지며 인기를 차지하는 요즘. 어떤 이들은 90년대 초중반 피제이 하비, 리즈 페어, 토리 에이모스, 커트니 러브, 비욕 등등이 개성 발산하며 새로운 세상 열었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기도 한다.언니들 정말 많다. 중견 삼촌 및 할배들이 지루한 음악만 들려주는 가운데 언니들이 희망인가.(여기선 유튜브 링크가 잘 보이는데 코리아에선 플레이가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다. 안 된다면 정말 안타까움 ㅜㅜ) 지나가다 M83 사운드 같다며 발견한 Chvrches의 Recover. 가운데 v는 u를 멋부려 쓴 거라고 미국인이 그랬음. 그래서 발음은 '처ㄹ치스', 한역하면 교회 밴드. FIFA 14에 We Sink가 수록되는 바람에 남자들 급관심. 브룩클린에서 작은 공연할 때 갈까 말까..

90년대 지하에서, 루 리드

때문이었는지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루 리드의 음악을 접하고 나서 그때까지 몰랐던 신비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를 찾아가는 길은 신촌의 '벨벳 언더그라운드'나 '구멍'으로 잠수하는 것이었다.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담배연기가 자욱했을 테고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덮쳤을 테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은 아무래도 좋았다. 신청곡 Venus in Furs가 나오면 이미 나는 이 세상에 없었으니까. 현실이 아닌 무의식의 어딘가를 유영하며 음악에 빠져드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I'm tired I'm weary. I could sleep for a thousand years. A thousand dreams that would awake me. Different colors made of..

[NYFF 51] 캡틴 필립스

*스포일러 스포일러 스포일러* 영화 보기 전에 읽지마셈 몇년 사이 개막작이었던 와 가 오스카 레이스의 선두를 점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뉴욕영화제는 미국내에서 주목해야만 하는 영화제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 베니스와 토론토에서도 공개되지 않은 핫한 신작을 미국내에 최초로 소개하는 자리가 된 셈. 올해 그 주인공은 폴 그린그래스의 였다.는 2009년 미국 화물선이 소말리아 해적단에게 피랍된 사건을 다룬다. 구체적으로는 인질로 잡혔다가 미해군 작전으로 구출된 필립스 선장의 회고록을 토대로 한다. 이미 미군의 승리로 끝난 싸움을 영화화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일단은 제목부터 개인을 부가시키는 '캡틴 필립스'이니 당연히 개인의 공로에 주목하는 영화가 아닐까? 구태의연한 감동을 전시하는 예고편을 볼 때부터..

극장/by released 2013.10.21

마이 코리안 델리를 읽었다

2010년 미국에 도착한 후 얼마 안 있어 'My Korean Deli'란 책 소개가 여러 매체에 등장했다. 한국인 이민자 가족과 사위로 인연을 맺게 된 백인 남자가 문화적으로 완전히 다른 한국가족들과 델리를 운영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했다. 한국 매체들 쪽에서 좋아할 것같아 소개나 하자며 몇 군데에 아이템으로 내놓았지만 별 반응은 없었다. 쓸 일이 없었으니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 얼마전 도서관에 갔다가 한국어 책 코너에서(온갖 인종들이 모여사는 동네라 무려 '한국책' 코너도 있다) 번역본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냅다 집어들었다. 영어로 훑었을 땐 다소 진지하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한국어로 옮겨지니 계속 킥킥거리게 되는 개그로 변했다. 이런 젠장, 여전히 한국어가 훨씬 편하다.ㅠㅠ 계속 읽어..

뉴욕 삼천포 2013.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