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must see movies

marsgirrrl 2009. 12. 12. 05:31

<시간의 춤>
100여년전 돈 벌러 미지의 세상 멕시코로 왔던 한인들. 돌아갈 수도 없는 이역만리의 땅에서 그들이 경험해야 했던 건 혹독한 노동. 한치 앞의 인생도 보이지 않았던 절망 속에서도 인간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는 그 '기적'에 대한 다큐멘터리. 체 게바라와 한국인 사이의 거리를 시적인 감성으로 짚어가는 여정. 쿠바에 갔던 송일곤은 요근래 한국에서 실종되버린 가치인 '낭만'을 선물로 들고 돌아왔다. 감히 올해 최고 로맨틱 무비라 말하고 싶다.

<에반게리온: 파>
90년대가 낳은 최고의 이야기 중 하나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소년이 '어쩔 수 없이' 신화가 되어야 했던 슬픈 시절에 대한 타임캡슐. 그 모든 비극은 어른들 탓이었을까, 혼란스러운 내 자신 때문이었을까. <에반게리온: 파>까지는 90년대 노스탤지어까지 겹쳐 텍스트를 재해석하고 '역동적으로' 정리하는 측면이 강한데, 그 이후 두 편에서는 이야기적인 재미가 더 확장될 듯하다.
(옛날에는 몰랐는데 감독님 여자 신체 잡는 앵글이 참으로 독특하구나)

<여배우들>
여러 세대의 여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음을 털어놓는 풍경만으로도 영화가 된다는 놀라운 증거물. 배우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해 만들어낸 레드원 카메라 시대의 시네마 베리떼,는 반농담. 소재의 희소가치와 흥미진진한 입담들 덕분에 그냥 보는 것만으로 재미있긴 하지만 '세상에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여배우가 있다'는 초기 명제에 걸맞는 심도 깊은 영화가 되기엔 부족하다. 다큐적인 마음을 덜어내고 막판에 좀더 치밀한 전개를 유도했으면 더 멋졌을 것 같고, 패션지 로고가 박힌 커버사진으로 안 끝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개인적 감상. 이재용의 홍상수식 실험이었을까.(어쨌든 이미숙 언니는 짱드셈)

그리고 <아바타> (선입견 주의!)
영화를 보기 전 수많은 의심은 당연하다. 언제적 제임스 카메론이며, 포카혼타스식의 예쁘지도 않은 캐릭터들은 또 무엇이며, 2시간 40분 3D 안경이 웬 말이냐. 초반 20분 동안 정도는 머리가 이성적 사고를 하고 있다. 뭘, 굳이 아바타를 만들어서 저렇게 힘들게 회유하나 등등등. 그러나 2시간 20분 뒤 영화가 끝나면, 여전히 판도라 행성에서 유체이탈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엔딩 크레딧 끝까지 3D 안경을 쓰고 있으면 다시 판도라 행성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비이성적 집착에 시달리고 말 것이다!(크레딧은 3D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레오나 루이스 노래가 후져 환상이 깨긴 하지만.) 무지막지한 상상력을 3D로 건축해낸 제임스 캐머런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와 사랑에 빠졌던 스펙터클의 첫경험을 환기하게 만든다. 선과 악의 대비가 뚜렷하고 멜로 라인은 빤하지만 그 구태의연이 아무런 거슬림이 없다.(아니, 거슬림이 없다고 믿기 위해 노력한다) 무릇 감독이란 존재는 말이 안되는 애기를 진실처럼 믿게 만드는 마술사였던 것이다. 3D 신세기의 시작.  Super Gorgeous movie!
.....
그러나 보고 나서 오래 생각하면 감동이 반감될 수 있으니 볼 때 그 마음을 그대로 봉인하는 게 13,000원을 아끼는 것. 3D 필수.
(그러나 나는 보는 내내 패러디 본능을 감출 수가 없었다. a. 저 길쭉길쭉한 나비족 앞에서는 인간은 모두 루저란 말인가. b. '그깟 나무 하나' 운운하며 대재벌이 불도저로 숲을 밀어버리라고 명령하는 장면에서 당연스레 누군가가 떠올랐다. 영화의 군산복합체가 남의 일이 아니었음. c. 이 아저씨 때가 어느 땐데 배우들을 백인으로 도배질하고 오리엔탈리즘의 판타지를 되풀이하나 했는데, 결론으로 보아 큰 문제는 되지 않을듯 d.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하야오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레퍼런스들.) 


그러나 판도라 행성을 벗어나면 현실은 시궁창.
서독제에서 상영하는 <경계도시 2>
송두율 교수가 귀국했던 때의 모든 면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기록자는 스스로의 혼란을 그대로 투영하며 지옥같던 한철을 담아낸다. 철학이 부재한 보수와 진보의 막장 싸움 구경. 몇 년 지나 세상은 더 막장이 되었다. 송두율 교수의 논란은 둘째치고, 그 당시 볼 수 없었던 한국사회의 큰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비논리적인 모든 면면이 마음에 쓰리게 박힌다. 혹독한 반성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성숙한 성장도.

낭만과 노스탤지어와 판타지 속에서 일렁일렁이는, 연말의 가여운 영혼. 나를 다시 판도라 행성으로 보내주세요.

p.s 스폰지 명동에서 미이케 다케시의 <이겨라 번개호>를 18일부터 상영. 진정 요번 연말은 영화에 압사당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