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어떤 해프닝

marsgirrrl 2009. 9. 16. 04:33

한 아이돌이 4년전 마이스페이스에 썼다는 한국 관련 투정이 인터넷 도마 위에 올라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꾸는 결과를 낳았다. 일종의 '호들갑'이라며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이 사건은 마치 은유 풍부한 영화처럼 까도 또 까도 곱씹을 게 남는 상태가 되고 있다. 내 보기엔 말이다. 인터넷 프라이버시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인신공격, 인터넷 뒤져 기사 쓰는 언론의 매너리즘, MB 정부들어 피해의식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젊은이들이 합세해 만들어낸 아름다운(ㅋ) 해프닝으로 보인다. 'I hate Koreans'를 당사자가 얼만큼의 경중을 갖고 썼건, 그걸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한국인을 증오해!)이 지금의 대중심리를 읽을 수 있는 알레고리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어느 정도의 부조리도 포함되어 있어 학자들의 떡밥으로까지 지위가 상승했다. 우리 내부의 민족주의? 군면제자 재미교포에 대한 피해의식? 국민적인 열등감? 아이돌의 병폐 현상? 어떻게든 해석하고 싶어 안달난 사람이 수두룩하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이 해프닝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것과도 동일한 맥락이다. 4년전 발언을 가지고 맹렬히 공격했던 키보드 워리어들은 그가 일주일만에 귀향을 결심하자 굉장히 뻘줌해졌다. 어른이 제대로 조목조목 인터넷 법과 도덕을 들이대며 비판을 했다면 잘못을 인정했겠지만, 방어자로 나선 것은 신뢰가 가는 언론이 아니라 빠순들이었고 때문에 가해자들의 죄책감이 증발했다. 문제는 이 사건을 놓고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모두 헷갈려한다는 것이다. 재범도 잘못이 있고, JYP도 잘못이 있고, 키보드 워리어도 잘못이 있고, 언론도 잘못이 있다? 모두 잘못을 전가하는 가운데 사건에 대한 해석은 점점 헷갈려만 간다.  이 헷갈림 자체가 현재 가치관의 혼란을 대변하는 것같아 씁쓸하다.
어쨌든 나는 해프닝 내내 재범과 끈끈하게 대화를 나눠오던 친구가 기특하더라만. 녀석, 친구 하나는 잘 뒀더라고. 사실 나는 그 문자로 주고 받는 우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 일이 이렇게 대국민적으로 커질지 몰랐지 뭐야. 어른 박진영도 은근슬쩍 발을 빼는 상황에서 연예인 친구들이 나서서 맞짱 변호 해줬으면 그나마 더 재미있는 싸움이 되었을 텐데. 산업 속에서 연예인 역군으로 자라난 아이들은 패기가 없구나.

+ 더이상 재범관련 기사를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도대체 어디까지 커지나 구경하고 싶어졌다. 나는 그 해석을 해석하는 사람이 되야겠다.
+ 그것도 그렇고 요즘 모든 대화의 소재가 아이돌이 되는 거 별로다. 사람들 참 재미없게 산다는 생각이 들어.
+ 요즘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많고 정신도 없어서 게을러진 포스팅. 가끔 이렇게 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