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표절이란 고질병

marsgirrrl 2009. 8. 12. 18:44

발표하는 음악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노래를 잘 불러서 관심을 갖고 있는 대중가수 Y가 있다. 길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그의 노래를 들었는데 마이클 잭슨의 어린 시절 곡과 똑같았다. 너무도 단순하게 '리메이크했나보네'라고 생각했다. 굳이 리뷰를 할 필요도 없는 새앨범을 그놈의 애정 때문에 짤막하게 리뷰를 했다. [독보적인 가사 전달력을 갖춘 Y는 더 넓은 장르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듯 보인다. 음악적 성숙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한 흥미로운 여정에 가깝다. (중략) 잭슨5의 'ABC’를 리메이크한 ***는 그의 명랑한 끼를 가감 없이 들려주는 곡. (중략) 다재다능한 면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선택과 집중’의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색을 만드는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쓸데없이 장르적 오지랍이 넓은 그 앨범에 최대한 호의적인 언어를 선택한 것이었는데, 문제는 요상한 곳에서 발생했다. 며칠 후 소속사라며 전화가 왔다. "보도자료는 보고 쓰신 거예요?"라는 요상한 물음. 세상에, 이분은 모든 기자가 보도자료 에디팅만 하는줄 아나보다. 싸가지 없는 전화 태도도 굉장히 기분이 나빴는데, 아무튼 요점은 그 곡이 리메이크도 샘플링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누구든 들으면 그 곡을 떠올릴 것 같은데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죠." 기가 차서 반문했더니 그쪽은 리메이크도 샘플링도 아니라는 말을 반복하며 마치 소송이라도 할 기세로 으르릉거리다가 전화를 끊었다. 

돌아와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미 표절 시비의 폭풍이 지나간 상태였다. 소속사 측은 그 곡을 두고 스웨덴, 일본, 한국 작곡가들의 야심작이라며 '순수 창작곡'이라고 주장했다. 어이가 없었다. 모르는 곡도 아니고 지하철에서 파는 만원짜리 CD에도 실리는 곡을 베껴놓고 뭐, 순수 창작곡? (요즘 분들이 잭슨5의 'ABC'를 게임에서 들었다나 하는 반응이 더 놀랍긴 했다) 좀 더 정밀하게 두 곡을 비교하며 들어봤다. 교묘했다. 표절을 피해가려고 하는 술수가 그대로 드러났다. 리메이크를 하고 싶었는데 콧대 높은 모타운이 값을 높게 불렀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무엇보다 Y에게 실망이었다. 팬들은 '울 누나는 잘못없다. 기획사 문제'라고 말하는데, 그 정도의 소양을 가진 가수라면 'ABC'를 모를 리가 없다. 소속사가 아무리 귀여운 컨셉으로 들이밀어도 음악하는 사람의 양심으로 거절해야 했을 게 아닌가. Y는 계속 방송에 나와 그 곡을 불렀고 사람들은 표절이든 뭐든 노래만 좋으면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어차피 대중가요. 한 철만 듣고 핸드폰 컬러링으로나 반복되다가 잊힐 노래였고 누구도 작품성을 따지진 않으니까. 나 혼자 마이클 잭슨 지못미였다. 죽고 나니까 이 사건이 더 짜증나는 기억으로 남았다.

사실 '심정적 표절'곡은 한 두개가 아니었다. 세븐이나 이승철도 황당했다. 박진영도 털어보면 먼지가 많을 것이다. 자기네들 저작권은 쌍심지 켜고 지키려하면서 제조할 때는 부도덕한 편법이 횡행하니 이런 도둑놈의 심보가. 최근 지드래곤도 자랑스럽게 신곡 30초 발표해놓고 표절의혹 사고 있는데, 글쎄, YG가 얼마나 스타일링에 능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런가. '창조'의 의미가 '에디팅'과 '스타일링'으로 변한지는 오래다. 미술과 음악은 창조적 재해석을 선두한 예술이었고 하물며 명품 디자이너들의 디자인도 이제는 창조가 아니라 과거 스타일 에디팅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사는 예술가들이 죄다 모더니즘 선배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게 시대의 결론이므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선대의 '가업'을 이어가는 후손처럼 겸양과 예의를 지켜야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원료비 아끼는데 충실한 한국의 노동집약적 예술계는 '공짜'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게다가 대다수의 한국의 예술가는 서양 트렌드를 처음 한국에 소개하면서 그 센세이셔널리즘으로 명성을 쌓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를 테면, 서태지처럼 외국문물에 민감한 얼리어답터들이 세계 트렌드에 발맞추는 결과물을 내놓고 '정말 새로운 것'이라며 의기양양해하는 식이다.(물론 꾸준한 훈련 끝에 서태지는 자신의 것을 찾는데 성공했다) 음악만 그런 것도 아니고, 영화, 미술, 패션 모든 분야에서 그래왔다. 한국인들은 특히 '신선하면 훌륭하다'는 집단 무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새로운 장르와 방법론을 들고 나오면 원류를 따지지도 않은채(어차피 남의 것일 게 분명하고) '천재'라 명명했다. 그게 인터넷 대중화 이전에는 가능했다. 이제는 은둔고수들이 입을 열게 되면서 얄팍한 선구자들의 생존이 위태로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Y의 경우처럼 만인이 베꼈다고 하는데 혼자 창작이라고 우기는 경우는 다반사다. 요즘 한국 돌아가는 논리가 우기면 만사쾌조긴 한데, 이는 Y의 기획사가 무식하다는 소리밖에 안된다. 기자들도 뭐, 보도자료 보고 진실 캐기 귀찮으니까 그런가 보다 입다물어 주고. 한국 음반산업 살려야한다는 논리 아래 기획사 언플이 가능한 거다. 이번에 지드래곤 앨범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잘 모르겠으나 YG가 '창작이다'고 하면 그게 진리가 될 게 분명하다.

단어 자체도 촌스러워진 '표절' 논란을 줄이려면 답은 간단하다. 공정 거래를 하면 된다. 선배들 거 마구 갖다 퍼쓰는 외국 애들을 봐라. 당당하게 누구누구의 영향을 받았다며 음악의 줄기를 이어간다. 음악적 토양 너무 척박하며 뿌리랄 것도 없지만 장기하처럼 산울림 신봉자임을 커밍아웃하며 선배 추켜세워주고 같이 투어까지 하는 사례도 있다. 사실 이런 경우는 뮤지션 자체가 싱어 송라이터로 음악적 식견과 철학이 분명한 인간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당연한 뮤지션상이 아닌가. 기획사에서 찍어내는 애들 욕하는 이유가 뭔가. 지네 노래 표절인 줄도 모르고 '어머 우린 시켜서 했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인형으로 인권 비하하니까 제대로 인간대접을 못 받는 거 아닌가. 워낙 시장 좁아 한철 장사에 올인하는 마인드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은 좀 쟁여둬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게 자꾸 장사가 되니까 노예계약이 범람하는 거잖아.(나중에 다 늙어서 아침마당 같은데 나와서 '아무 것도 몰랐어요. 저는 순수'라고 지랄 떨며 회고록 읊지 말라고)

만드는 애들도 한 번 떠보겠다고 양심 좀 팔지 마라. 좋은 곡 먼저 듣고 이걸 어떻게 가요로 그럴 듯하게 탈바꿈시킬까 하는 요령만 늘고 있다. 사무실에 앉아 최신곡 들으며 머리만 굴리니 그런 영혼 없는 노래들만 나오는 거겠지. 그래놓고 세기의 아티스트라도 된 양 떠들지나 말든가. 듣는 애들도 문제가 많긴 마찬가지. 한국식 삶의 태도와도 관련된 건데, 과도한 유행 집착이랄까. 유행 지나면 뒤돌아보지 않는 그런 태도. 남들 입으면 다 입고, 보면 다 보고, 들으면 다 듣고. 아무리 전문가가 옆에서 맥락 짚어주고 싼 것들 몸에 안 좋다고 짖어대도 콧등으로 듣고 '제공자'와 '브랜드'만 맹신하는 상황.(제대로 된 전문가층 빈약한 건 알아요) 
그러니까 표절은 고질적인 한국병이란 말이지. 빨리 싸게 만들어서 한철 장사하려는 그런 태도가 만들어낸 고질적인 시스템이라고.

+ 그런데 아놔, 이것 좀 웃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