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레슬러 by 대런 아로노프스키

marsgirrrl 2009. 3. 14. 01:21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쫄바지는 처음입니다


80년대 레슬링 스타는 녹록치 않은 몸을 이끌고 오늘도 무대에 선다. 관중도 적은 무대에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만 노가다 백날 뛰던 사람이 안 뛰면 더 병나듯, 레슬러는 그렇게 습관적으로 링으로 향한다. 올라간 링 위에서는 프로페셔널 마인드를 잃으면 안된다. 백전노장은 적절한 타이밍에 손수 상처를 내서 피범벅이 되고, 적절한 타이밍에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링 밖에 그들을 향해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는 외롭지 않다.

그러나 램 짐의 쫄쫄이를 벗고 체육관 밖을 벗어나면 그는 '루저' 로빈 램코스키일 뿐이다. 레슬링의 '레'자도 모르는 아이들과 한판 놀아주거나, 자신이 주인공인 80년대 닌텐도 게임이나 부스럭거리고 있다. 돈도 없고 약으로 버텨야 하는 삶. 유일한 가족인 딸에게도 외면당한 그에게 친구라곤 단골 스트립 바의 캐시디뿐이다. 몸도 맛탱이가 가서 약으로 버티다 못해 이제 심장 발작까지 걱정해야 하는 신세. 깔맞춤 청카바와 청바지의 '간지'를 비껴가는 보청기가 안스럽다.

허상이더라도 외롭지 않은 데다 '영웅'의 칭송을 받는 하이퍼 리얼리티. 나이든 루저 노친네로 늙어갈 리얼리티. 두 개 중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랜디는 레슬링의 세계가 '쇼'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쇼에 복무하고 있다고 해서 그의 인생 전체가 쇼가 될 수 있을까? '스포츠 레슬링'보다 하찮더라도 '쇼 레슬링'에 대한 그의 자세는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80년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무대를 보며 행복해했다면, 그 모든 게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80년대는 모든 허세와 허상이 극에 달았던 시대였고, 거기에 지친 90년대 사람들은 이면의 진실을 폭로하며 '세상은 모두 매트릭스'라고 외쳐댔다. 모든 사람들이 80년대를 비웃었다. 90년대 내내 80년대는 조롱거리였다. 그러나 그 시대의 대표적 아이콘인 '레슬링'과 '헤비메탈'은 랜디에게 전부였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고 말하며 엠티비 시대는 진정성이 없다며 '말세'를 외쳤더라도, 그 안에서 문화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진심마저 의심하면 곤란하다. <레슬러>의 위대함은 '하이퍼 리얼리티의 삶'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거짓된 쇼라도 최선을 다했던 삶이라면 거짓이 진실이 된다. 함부로 '가짜 자아' '만들어진 자아'라고 말할 수가 없다. 누가 내 인생을 '가짜'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당신에게 그런 오만한 권리를 줬는가?

80년대는 패션뿐 아니라(2009 f/w 시즌 어깨뽕은 정말 악몽이지만) 영화에서도 재해석된다. <웨딩싱어> 같은 코미디는 그저 노스탤지어를 자극할 뿐이었다. 하지만 <레슬러>는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이 영화는 매체가 만들어낸 80년대 영웅들에 대한 오마주다. 80년대 문화를 향유하며 꿈과 희망을 가졌던 젊은이의 감사의 표시다. 대상은 한물 간 레슬러일 수도 있고, 한물 간 록커일 수도 있고, 한물 간 액션배우일 수도 있다. 그리고 거기에 딱 맞는 인물, 현실과 비현실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단 한 사람은 한 시대를 풍미하고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미키 루크밖에 없어 보인다.(크레딧에서 열렬하게 감사의 인사를 했던 액슬 로즈도 가능했을 수도) 
링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우리는 주인공의 뒷모습만을 봐야 한다. 이 시선은 주인공의 것이다. 마트의 뒷풍경 속에서 관중의 환호성이 환청처럼 낮게 들려온다. 비닐장막을 걷고 마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곳은 링이 아니다. 이 괴리감 속에서 결국 랜디는 진짜 환호성이 공간을 채우는 링을 선택한다. 그의 현실은 남들의 비현실인 '링'이다.

트렌디한 수퍼히어로는 링밖과 링을 영리하게 봉합할 줄 안다. 스파이더맨도 그랬고 배트맨도 결국 밤무대 속에서 살아야 하는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왓치맨은 정치가 만들어준 링 밖에서 늙어가지만, 오지명디아스(오지맨디아스)는 그 링을 고수하기 위해 최후의 선택을 했다. 인생 전체가 판타지인 수퍼히어로는 그럴 수 있지만, 현실과 판타지가 명명백백하게 나눠지는 레슬러는 봉합이 불가능하고 결국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80년대 음악이 정말 좋아. 커트 코베인이 모든 걸 망쳐버렸어"라고 말하는 랜디는 그저 낡은 세계에 처박혀 사는 구식 노친네일 수도 있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짧았던 영광의 순간만 기억하며 나머지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 영광의 순간을 현재로 다시 소환할 수 있다면, 비록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해도, 선택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80년대 소울을 가진 랜디는 채찍질만 당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예수처럼 자신을 골고다의 길로 이끄며 스스로를 구원한다. 이 무모한 용기야말로 우리가 80년대로부터 배워야 하는 진짜 교훈이다. 80년대 비디오 스타들이여, 뒤늦게나마 당신들의 빛났던 열정에 존경을 표합니다.



+ 80년대에 한 성깔 했던 양대 섹시 스타 미키 루크와 숀 펜이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로 만났다. 앞으로 상 받을 일 없을 미키 루크가 상받았으면 좋았을 것을. 같은 할리우드 악동이라도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숀 펜과 여전히 악동의 이미지로 살고 있는 미키 루크와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아카데미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작년 아카데미로 이 시상식이 진보적이라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본디 아카데미는 보수적이었다)

+ 80년대의 과도한 키치적 인공성을 깔깔대며 비웃었던 나는 그 속에서 심오한 교훈을 찾아낸 대런 아로노프스키와 작가가 놀라울 뿐이다. 이제 늙어가는 그들의 삶에 내 삶이 겹쳐진다. 저밖은 내 삶이 아니야. 내 삶은 이 안이지. 오 마이 갓. 영화기자인 나도 하이퍼 리얼리티에 쩔어있어요.

+ 간만에 영화 보고 감동받아서 빨리 가서 글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고마워요 <레슬러>.

+ 매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미키 루크. 캬하. 당신의 묶은 머리 너무 귀여워요. 사자 머리는 지금 내 상태와 너무 비슷해서 조금 깜놀. 미키 루크는 얼마 전에 <아이언맨 2>에 러시안 악당 역에 오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