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1987 성공한 것과 못한 것

marsgirrrl 2018. 1. 20. 17:41


<1987>은 눈내리는 겨울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시작한다. 겁에 질려 도착한 의사와 간호사는 누워있는 청년의 사망을 확인하지만 사인에 대한 진실은 탁자 위에 놓인 안경 너머로 숨어버린다. 관계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진실을 은폐하는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죽은 청년을 보따리라 부르는 치안본부 박차장은 요정에서 만난 안기부장과 더 큰 정치공작 계획을 세우고, 경관들은 시체의 화장 승인을 받기 위해 공안 검사의 방으로 향한다방심하던 사이, 폭력의 수직 질서로 마땅히 해결되야 하는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공안 검사가 더 이상 군바리치안본부 잘못을 뒤집어 쓸 수 없다며 기선제압에 나선 것이다. 은폐되어야 하는 사인이 남영동에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목격자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 폭력과 금품으로 입막음을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과 진실을 밝히려는 자들의 절박한 추격전이 펼쳐지면서 <1987>은 정치 스릴러 장르로 나아간다. 영화의 목표는 확실하다. 진실을 무기로 남영동 악당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러나 그 진실은 어떻게 남영동 건물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영화의 전반부는 이중삼중으로 가려진 조직 내에서 진실이 누수되는 과정을 긴박하게 담아낸다.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을 승인하는 검사, 사인을 윗선에서 원하는 대로 보고하지 않는 부검의, 보도지침을 거부하고 맹렬하게 취재하는 기자가 진실을 밝히는 자들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 고 박종철 가족의 오열을 목격한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의 직업 윤리로 가능한 일을 하는 것뿐이다. 진실은 은폐하는 자들은 "기라고 하면 기고" "몸통을 지키기 위해 꼬리를 자르는" 세계에 속한 자들이다. 전대통령 초상이 내려다보는 빛이 잘 통하지 않는 방에서 오로지 고문에만 집중하는 존재들. 그들은 결국 사인이 고문치사로 밝혀지자 체포될 위기에 처한다. 덕분에 이제 이들의 동선은 남영동 밖을 향한다. 


배경이 교도소로 바뀌고 교도관이 등장하면서 <1987>은 후반부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제 진실은 교도소 밖을 넘어 박차장이 공작대상으로 정한 정치수배범 김정남에게 도달해야만 한다. 메신저 역할을 맡고 있는 교도관 병용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인상이 안 좋아서 거리의 불심검문에 항상 걸린다는 것이다. 일단 그 연결을 위해서 가상의 인물 연희가 등장한다. 봄을 맞이해 이제 막 대학 신입생으로 교정을 걷게 된 연희는 등장인물 중 남영동 대공분실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인다미롭게도 <1987>은 전반부 스릴러에서 여자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고문실, 경찰청, 검찰청은 약자들이 거의 존재할 수 없는, 폭력의 질서로 이루어진 남자 세계다. 그 폭력에 대응해야 하는 언론사도 남자들로 구성된다. 요정의 여자들은 거의 아웃 오브 포커스이며, 최환 검사의 여자 비서는 재빨리 프레임 안에서 사라지고, 잡혀온 여자 학생은 머리가 잡힌 채 고문실로 끌려간다. 그 과정에서 고 박종철의 엄마와 누나에게는 정면 컷이 허락된다. 자식을 잃은 억울함과 슬픔은 그 자체로도 공명이 큰 감정이다. 그 감정이 충분히 전달되도록 영화는 유가족이 등장하면 스릴러 속도를 지연시키고 시간을 할애한다. 이 멈춤의 시간들은 이 영화가 무엇을 위한 영화인지를 되새기게 만드는 동시에 마지막에 폭발하는 감정선에 대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연희 가족은 나중에 삼촌 병용이 남영동으로 끌려가게 되면서 박종철 가족의 슬픔을 공유하게 된다. 그전까지 연희는 세상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최루탄이 가득한 거리를 걷다가 백골단에게 억울하게 맞거나, 충격으로 가득한 광주항쟁 다큐멘터리를 보고도 가리워진 길을 들으며 마음을 달랠 뿐이다. 삼촌이 잡혀간 뒤 남영동을 찾아가 엄마를 구타하는 전경들에게 큰소리를 쳐보기도 하지만 폭력의 세계에서 약자는 관계자 자백을 위한 인질 정도의 가치밖에 없다. 어쩌면 연희는 계속 교차편집되는 남영동 무리들에게 똥개보다도 못한 존재일 것이다연희와 함께 그 정도의 대접을 받는 이가 한 명 더 있다. "지키고 가두는" 일에 충실한 교도관 안유는 규정을 위반한 이들을 가두고자 내부고발자가 된다.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연희와 안유는 진실을 교도소 밖으로 전달해 폭력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중심 인물이 된다


두 인물들의 심적 갈등이 후반부 이야기의 중심이 되면서 전반부보다 서스펜스의 밀도가 낮아지고 대신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인다.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백주대낮 김정남 추격전은 전반부의 고밀도 스릴러와 달리 고전 영화 교본처럼 진행이 되기 때문에 갑자기 영화 보기가 쉬워진다. 진실이 밝혀지고 악당 박차장의 몰락이 예견되는 교회 장면에서는 <영웅본색> 패러디인가 싶은 구태의연한 장면까지 등장해 권선징악의 쾌감을 높인다. 동시에 순교하는 예수가 새겨진 스테인드글라스를 비추며 1987년도의 순교자같은 존재인 박종철 고문 살인 사건의 진실을 가슴 아프게 목격하게 만든다. 가해자들을 제외하곤 누구도 목격한 적이 없는 사망의 순간을 30년 후 영화 속에서 온 관객이 마주하게 된다. 순교의 시간이 끝나면 영화는 쉴틈을 주지 않고 다시 대단원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는다. 죄수가 되어 벌을 받게 된 박차장의 이야기는 남영동 월드에서 그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최검사와 교도소장과 재회하며 일단락된다. 

그렇다면 다른 주인공 연희의 마무리는 어떠한가. 때마침 양초(!)를 정리하던 연희는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았다는 기사에 놀라 광장으로 달려나간다. 그리고 관객은 보도 사진으로만 봤던 이한열의 모습을 그가 쓰러지는 시점으로 목격하게 된다.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밝게 웃었던 청년의 비극을 목격한 관객은 타이거 운동화를 신고 움직이는 연희를 따라 광장으로 나간다. 그리고 연희의 시선으로 버스에 올라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민의 물결을 바라본다. 이 물결에 더 크게 감동을 받는다면 아마도 우리 대부분이 작년 촛불집회를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1987>은 인물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사건을 다면적으로 쌓아가는 <뮌헨>처럼 시작했다가 세상을 달리한 두 청년 열사의 비극적 순간을 극대화하며 <레미제라블>스럽게 막을 내린다. 죽음을 목격한 뒤부터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만약 노래를 알고 있다면) '그날이 오면'을 마음 속으로 따라부르는 게 당연하다. 장르의 규칙을 섬세하게 따르면서도 감정의 진동을 잃지 않는 장준환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연출이다.

<1987>은 한국영화사에서 굉장히 보기 힘든 고밀도 정치드라마의 외형을 갖추면서, 동시에 중요한 역사를 다루는 영화의 책임감을 보여주는데 일정 시간을 할애하는 영화다. 어떤 이들에게는 1987년 6월 항쟁이 자랑스러운 역사로서 스크린에 재현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경험일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1987년의 이야기가 이렇게 짜임새 있는 장르 영화로 각색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을 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양쪽의 균형을 위해 대사 하나 허투루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생생한 다큐멘터리나 치열한 멜로드라마 중 한 쪽만을 기대했던 관객에겐 모자른 영화가 될 수 있다. 6월 항쟁을 다루지만 온전히 시위대에 주목하는 영화가 아니며(특히 이한열이 참여하는 연세대 시위에만 주목하며), 정치스릴러치고는 인물들의 감정이 극도로 과잉되어 있다. 오히려 <1987>은 역사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봐야 '영화적으로' 더 잘 보이는 영화다. 어떤 역사적 부연 설명이 필요없을만큼 각본 자체가 이야기로서 독보적인 완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상으로 허점이 있다면 관객을 광장으로 안내해야 하는 연희가 다른 인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드라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자를 대표한다기보다는 희생자의 가족과 침묵하는 다수를 대표하는 인물인 그녀에게는 크게 극적인 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 캐릭터를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영화 전개상 연희가 안내하는 6월 항쟁의 장면은 초반 스릴러에 비해 집중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캐릭터는 부족해도 관객의 87년 혁명에 대한 기대 덕에 마지막 장면은 감동의 대단원으로서 작용한다. 하지만 연희 캐릭터 자체가 어떤 감동을 만들어낸 건 아니다. 앞선 말을 다시 반복해보자. 두 열사의 죽음으로 슬픔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관객은 연희를 통해 슬픔의 에너지를 시위의 장면에서 시원하게 발산해야 하지만 연희는 그 정도로 강렬한 존재가 되어 관객의 감정을 해소시켜주지 못한다. 노래 '그날이 오면'이 오히려 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극적 기능을 약화시키는 기능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리고 말지만, 시간을 거스르는 죽음의 장면들이 안기는 충격의 여파 덕분에 어쨋거나 영화는 목적한 바를 달성한다. 


영화는 세상을 바꾼 사람들을 조명하기 위해 윤리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듯 보인다. 공포와 사리사욕에 매몰되지 않고 법의 질서를 지키며 할 일을 다하는 사람들과 두려움 없이 거리로 나오는 젊은이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1987> 세상의 영웅들이다. 연희 캐릭터가 가지는 의의는 서투르게나마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시점에 목격자이자 참여자로서 시민의 위치를 점한다는 것이다. 그녀 앞으로는 조금은 능동적일 수 있을 미래가 놓여 있다. 적어도 가리워진 길은 아닐지 모른다. 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연희가 참여하게 되는 1987년의 순간을 엄청나게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부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7년의 탄핵시위를 등에 업고 1987년을 더 부각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유치한 짓을 하지 않는다. 승리를 과대 평가하지 않는 대신, 모두가 힘을 합해 폭압의 구조를 무너뜨린 것에만 집중한다. 향후 30년간 닥칠 일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먼저 앞서기 때문일까.


<1987>은 독립운동이나 조선시대 민중 봉기같은 먼 과거를 현실의 거울로 삼곤 했던 빈한한 역사 드라마 세계에 1980년대를 소개하는데 성공한다.(이 정도로 80년대 정치사를 꼼꼼하게 다룬 영화는 찾기 힘들다) 동화같은 레트로 페티시 추억담으로만 존재했던 1980년대가 역사 소재로 제자리를 찾았다. <1987>을 시작으로 세상을 바꾸었던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이 지속적으로 영화화되길. 시민 연희를 더 입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이 만들어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