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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기

글정리 of 2014

말쓰걸 marsgirrrl 2014.12.22 06:56

한해가 끝나간다. 이민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산 첫 해였고, 내 돈으로 문화생활 즐기는 비용이 급격이 늘어난 한 해. 한국과 미국(엄밀히 말하면 뉴욕) 사이에서 무엇에 대해 써야하는지 혼란을 겪는 가운데 한국에선 세월호같은 큰 사건들이 뻥뻥 터졌다. 

나라 안에 있을 때 시국에 대해 떠드는 나라밖 사람들에 대해 못마땅해 했던 나였기에, 현재 내가 그 대상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에 계속 불편하다. 어디서부터가 오지랖이라 명명될 수 있는지 그 범위가 불분명한 가운데, 나는 아주 조금씩 발언의 세기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어차피 관심을 두는 이는 없다. 수긍할 만한 말을 하면 인정이 되고 아니면 무관심이다. 여기서 알게된 점 중 하나는 내가 지금까지 글을 쓰며 얼마나 촘촘하게 시선의 방어막을 쳐두었냐는 것이다. 검열된 만한 타인의 시선들을 재빨리 파악해서 그 필터를 재빨리 적용하는 그런 기술만 발달시킨 거랄까. 어떤 생각의 실마리가 있을 때 이미 사방의 시선들이 그 실마리를 이러저리 헤집어서 위험하게 빠지지 않도록(다른 말로, 독자가 요동치지 않도록) 방향을 수정해나간다. 

고로,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나 알고보면 타인의 시선에 지극히 민감한 내가, 타인의 시선을 어디서 어디부터 엮어야할지 오리무중인 미국땅에 도착해서 혼란을 겪는 게 당연하다. 인정할 만한 시선들을 엮어서 만들어내는 '가장 동시대적인 글'에 대한 환상같은 걸 좇고 있었던 걸까. 나는 지금 내 지인들과 같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그 추론을 위해 날마다 SNS를 뒤적이지만 혼란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선에 대한 정리가 아직 끝나지 않은 가운데 그 혼란이 원칙까지 흔드는 경험을 가끔 하곤한다. 예를 들면, 어떤 영화를 볼 때 '이 영화는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려야 할 때. 판결이라고 하니 우습긴 한데, 뭐, 과장 섞어 단어를 고르자면 그렇단 말이다. 시선들 필터를 통과하지 않고, 원칙과 내 주관에만 의지하니 판결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진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눈치볼 일이 거의 없어져서 '나'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인스타그램같은 필터없이도 원본으로서 내 생각과 글이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방법을 계속 고민 중인데 답이 쉽게 나온진 않는다. 

주문받은 글을 고품질로 생산해내며 커리어를 쌓을 수도 있으나, 경쟁이 너무 심해(아니면 사양산업이라) 일거리가 계속 떨어진다. 


삶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먹고 사는 수준은 조금 나아졌다. 버는 돈은 비슷한데, 욕망이 줄었기 때문인가 보다. 월세가 한국에 있을 때보다 4~5배 더 많이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먹고 살고 있다. 크레딧 카드도 없고 만날 친구들은 훨씬 줄었다. 밖에서 술마실 일은 드물어지고 담배도 끊었다. 한국에선 (직업의 특성상) 퇴근시간 딱히 없었고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다른 글을 써야만 했다. 일과 놀이와 사교가 뒤범벅이 되어 시간이 흘러갔는데, 여기선 그 모든 시간이 칼같이 구분된다. 변화한 환경에 아직 적응하고 있지 못함이 분명하다. 시간이 비면 어떤 글이든 써내려갔던 내가 이렇게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뉴욕 맨하탄은 아니지만 맨하탄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 보람은 있다. 도시처럼 느껴지지 않는 곳에선 사고가 정지해 버린다. 도시는 도시다워야 한다. 도시가 아니면 스스로 생기가 없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점점 도시에 지치는 느낌인데 이건 뉴욕에 지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신났을 때도 반짝반짝거리고 우울해도 반짝반짝거리는 도시. 그 그늘에서 부딪히는 풍경들. 불편한 감상이 점점 늘어난다.무엇보다 비싼 도시인 건 사실이다. 


사람들에 대한 이해 혹은 포기가 점점 쉬워진다. 한국 사람들만 이상한줄 알았는데 세상엔 그 이상의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멋진 사람들도 많고 별난 사람도 많고 잘난 사람도 많고 못난 사람도 많고 못된 사람도 많다. 나도 청소년기 넘어서면서부터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이해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에 오히려 그런 시선엔 별 거부감이 없다. 어차피 나이가 들어가니 젊었을 때만큼 관심을 받지 못한다. 이상하든 안 이상하든 늙으면 관심 끝. 같이 늙어갈 돈독한 지인들이 존재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안도. 


이민, 노화, 결혼, 업종 전환. 삶의 한 세번째 챕터쯤 되는 삶은 여전히 내 삶인가 아닌가 하며 문득문득 정리를 해보곤 한다. 이렇게 정리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인 걸까.

리처드 링클레이터의<보이후드>는 삶이란 순간들로 이뤄져 있다고 말한다. 올해 내내 계속 이 생각을 했다. 인생을 선형적인 이야기로 바라보는 태도를 자제하려고 한다. 내가 <아르미안의 네딸들> 주인공도 아니고 나이가 몇인데 운명을 믿고 있나.

뜻하지 않은 비극적 죽음들을 너무 많이 접해서인지도.


순간이 좋으면 좋은 것.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세상에서 순간에 충실하자는 결론의 2014. 

철들은 것같다. 

시선은 여전히 혼란. 

 

*올해가 가기 전에 사진정리, 영화정리, 음악정리 시리즈로 하겠다며 굳은 결심을 해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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