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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커너상스란 무엇인가

marsgirrrl 2014. 3. 1. 15:07

1992년 데이즈드 & 컨퓨즈드의 우덜슨 형님


* 매거진 M 원문 기사


맥커너히식 나의 삶을 사는 법

1992년 영화 <데이즈드 & 컨퓨즈드>의 한 장면. 선배 역의 매튜 매커너히가 10대 꼬마들을 앉혀 놓고 말한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이가 들수록 따라야 할 규칙이 더 많아져. 결론은 계속 너의 삶을 살라는 거야(Just Keep Living).” 그후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대사는 여전히 매커너히의 영혼을 밝히는 주문으로 작용한다. 로맨틱코미디의 왕자님으로 군림했던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삶을 잘 살고 있는 듯했다. <웨딩 플래너> <10일 안에 남자 친구에게 차이는 법> <풀스 골드>같은 클리쉐로 가득 찬 로맨틱 코미디에 계속 캐스팅됐고, 악평이 난무했던 액션 영화 <사하라>는 셔츠를 벗은 매커너히를 당대 최고 섹시 스타로 만들었다. <타임 투 킬>의 연기로 주목받던 신인 시절도 있었으나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연기파 배우로 기억하지 않았다. 캐릭터 복제나 하며 고소득을 올리는 느끼한 미남 스타가 한 명 추가된 것 뿐이었다.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창조적인 보람을 느낄 작업이 필요했다. 2년 간의 노력 끝에 <킬러 조> <매직 마이크>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같은 영화들에 도전했다. 수익이 줄어 집세도 간신히 내야 했지만 배우로서는 이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 메이저 영화사에서 제공해주는 개인 트레일러가 없는 힘겨운 촬영 현장이 대부분이었지만 도전 자체에 심취하다 보니 그런 외적 조건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Keep Livin, L.I.V.I.N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킬러 조/버니


맥커너히 에볼루션

맥커너히의 연기파 진화 여정의 출발을 알렸던 영화는 <링컨 차를 탄 변호사>. 링컨 자동차 뒷자석에 앉아 변호사 업무를 보는 미키 할러는 거리의 각종 소사를 해결하는데 능하다. 사무실에 앉아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을 필요가 없는 그는 고객의 요구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감정노동을 하지 않는다. 어떤 어두운 구석도 찾아볼 수 없었던 로맨틱 코미디 황제가 법의 허점을 이용해 꼼수로 승부하는 거친 변호사로 변했다. 매튜 매커너히는 이 영화를 통해 반듯한 꽃미남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살과 뼈를 가진 인간으로 거듭났다. 의외의 캐스팅에 반신반의했던 평론가들은 그의 가능성을 믿게 됐고, 영화팬들은 그가 90년대 영화에서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다는 걸 기억해냈다.

이어지는 원투 펀치는 <킬러 조><버니>였다. 돈이 궁한 가족이 양엄마의 생명보험을 타내기 위해 청부살인을 의뢰한다는 내용의 <킬러 조>에서 매튜 매커너히는 경찰이면서 잔인한 청부살인도 서슴치않는 사이코패스 킬러 조를 연기했다. 그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자 드디어 매커너히를 다시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버니>는 이런 평가를 더 굳히게 만들었다. 친절하고 사려깊은 가짜 목사를 연기하는 잭 블랙이 영화의 중심이었지만 그를 추격하는 고집 센 남부 보안관 맥커너히는 잭 블랙과 접점을 이루며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가수가 완벽한 음을 맞추듯 캐릭터의 디테일을 세밀하게 표현해냈다. 아름다운 미소의 꽃미남이 사라진 대신 정겨운 남부 억양과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가 공존하는 배우가 등장했다. 매튜 매커너히 일생일대의 터닝 포인트였다.


매직 마이크/페이퍼보이/머드


매커너히 르네상스

<매직 마이크> <페이퍼보이> <머드>가 순차적으로 개봉되면서 한 잡지는 매커너히와 르네상스를 조합해 ‘매커너상스(McConaissance)’란 말을 만들어냈다. 모두가 공감할만한 타당한 표현이었다. 이 시기의 어떤 영화를 꼽아도 매커너히의 연기는 훌륭하다. 남자 스트립 클럽을 배경으로 한 <매직 마이크>로 시작해보자. 매커너히는 훨씬 어린 꽃미남들에게 굴하지 않고 가장 선이 굵은 연기를 펼치며 영화의 톤을 장악해버린다. 청춘 시절에 대한 향수와 돈에 대한 탐욕이 뒤엉킨 스트립 클럽 사장 역할은 매튜 매커너히가 마치 지나온 로맨틱 코미디 캐릭터들을 패러디하는 것 같아 더 흥미롭다. 1960년대의 열혈 기자로 등장하는 <페이퍼보이>는 또 어떤가. 부당하게 옥살이를 하는 죄수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취재를 다니던 젊은 기자 워드는 목적한 바를 이루는 동안 여기저기서 배신을 당하고 몸까지 만신창이가 된다. 니콜 키드먼, 잭 에프론 등 여러 배우들과 함께 앙상블을 이뤄야 하는 이 영화에서 매커너히는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은 균형감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단독으로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머드>로 넘어가면서 그의 연기 진화는 절정을 맞이한다.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거는 남자 머드의 이야기는 한편의 아름다운 전래동화같은 느낌을 준다. 사랑을 찾는 떠돌이 청년은 이보다 자유로울 수 없는 보헤미안의 모습이지만, 사랑에 대한 믿음에 사로잡혀 약간 혼이 나간 상태다. 늘 은둔고수처럼 인생에 대해 꿰고 있는 괴짜 남자들을 연기하는데 능했던 맥커너히는 <머드>에서 세상 물정 따위에는 관심 없는, 순수함 그 자체인 남자를 표현해낸다. 이런 남자에게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먼 길을 돌아온 맥커너히는 더 넓은 층의 사랑을 얻게 됐다. 섹시한 얼굴과 몸으로 얻은 순간적인 사랑이 아니다. 오로지 연기로 일궈낸 충성심 어린 보상인 것이다.



매커너히 레볼루션

20킬로그램을 감량하고 에이즈 환자 역에 도전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맥커너상스’의 결론을 알린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 신이라도 영접했나 싶은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 매커너히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짜 배우로 거듭났다. 영화 주인공 론 우드러프는 연기하기 까다로운, 복잡한 정체성의 인물이다. 남성성을 과시하는 텍사스 카우보이 마초였던 그는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고 약을 찾으러 다니면서 동성애 커뮤니티와 인연을 맺게 된다. 곱게 죽기를 거부한 그는 효과적인 치료제를 발견한 뒤 에이즈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장사에 나선다. 일개 장사꾼이었던 그가 치료제에 대한 식약청 허가를 얻기 위해 에이즈 투쟁의 선봉에 서면서 시민 영웅으로 거듭난다. 마초 카우보이에서 에이즈 치료약 사업가로 변신하고 나중에는 에이즈 액티비스트로 발전하게 되는 놀라운 여정이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흉한 얼굴과 섹시함과는 거리가 먼 말라깽이 몸매를 갖춘 매튜 맥커너히는 론 우드러프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때문에 골든글로브와 배우조합상의 남우주연상 수상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도 유력하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상황이다.

비록 시상식에서 언급은 안 되고 있지만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마크 하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캐릭터다. 이제 막 증권거래 시장에 들어온 새내기 후배를 앉혀 놓고 그는 월스트리트란 사상누각에서 살아남는 비법을 전수한다. 초반에 잠깐 등장하지만 영화를 본 후에도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되는 캐릭터다. 더불어 절친 우디 해럴슨과 함께 촬영한 TV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가 공개되면서 2014년 초반부터 맥커너히는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고 있다. 그가 맡은 지독한 염세주의자인 러스트 형사는 미궁의 살인사건을 추격하며 인간사의 어두운 이면을 파고 들어간다. 마치 자신을 괴롭히는 매저키스트라도 된 듯 매커너히는 자신을 어둠의 핵심으로 끌고 가는데 두려움이 없다. 선과 악, 흑과 백을 초월한 이런 경계인의 이미지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인터스텔라> 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웜홀을 이용해 시간여행 가능한 설정 안에서 맥커너히는 수많은 결이 얽힌 감정의 파도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명성을 재조립해 누구나 원하는 배우로 거듭나는데 성공한 그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듯 데뷔 시절 명대사 "올라잇, 올라잇, 올라잇"을 반복하면서.(<데이즈드 & 컨퓨즈드>의 이 대사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패러디로 활용된다. 골든글로브 수상 소감 때 이 말을 하기도 했다)  


최근 드라마 트루 디텍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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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매커너히의 과거는?


이런 느끼느끼 남자였던 것이다


전형적인 조각 미남인 매튜 매커너히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느릿한 텍사스 말투까지 겸비해 일찌감치 ‘미국 남자’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는데 성공했다. 여러 영화들을 거친 그가 섹시스타로 이름을 날리게 된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 <웨딩 플래너>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 <사하라> 등의 영화들이 연속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2005년엔 <피플>지 선정 ‘살아있는 최고의 섹시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달콤한 미소로 여자들을 홀리기만 하면 수억의 돈을 벌 수 있었다. 스스로 ‘새터데이 캐릭터’라 부르는 이 비현실적인 인물들은 연기하는 동안 배우로서 회의를 느껴 로맨틱 코미디를 중단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내와 매니저를 불러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어서 흥분도 되고 무섭기도 한 도전적인 역할”을 선택하는 게 과제였다. 빤한 역할들을 모두 거절하고 나니 더 이상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았다. 시나리오 가뭄을 겪으며 2년의 세월을 보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고 있을 때 구원의 전화벨이 울렸다. <킬러 조>를 준비 중인 거장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이었다. 감독은 그에게 청부살인을 하는 으시시한 경찰 역을 맡기고 싶다고 했다. 이어서 스티브 소더버그 감독이 <매직 마이크>로 미팅을 신청했다. 데뷔작 <데이즈드 & 컨퓨즈드>로 만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잭 블랙이 동성애자 목사로 등장하는 <버니>로 재결합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즈음에 투자자를 못 구한 프로젝트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맥커너히의 시야에 들어왔다. 어느 하나 놓치기가 아까워 모든 역할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아내에게 “리셋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녀는 쿨하게 대답했다. “정말 모두 하고 싶어? 그럼 나가서 기회를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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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커너상스 McConaissance (***르네상스 영어 발음이 ‘레너상스’여서 발음이 ‘맥커너상스’임)

한 잡지가 맥커너히의 특별한 제2 전성기를 ‘르네상스(Renaissance)’에 빗대어 두 개를 조합한 단어를 만들어냈다. 문예부흥 운동을 통해 유럽 문화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간 것처럼, 맥커너히도 깊이가 남다른 특별한 캐릭터들을 연기하며 맥커너히 2.0으로 넘어갔다는 맥락이다. 이 단어는 이제 맥커너히의 진화를 뜻하는 의미로 빈번하게 사용돼 거의 고유명사처럼 굳어져 버렸다. 맥커너상스는 여전히 유효해보이지만 일각에서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그의 진화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더이상 맥커너상스라고 부를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맥커너히는 이런 용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점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수입면에서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것” 정도로 자신의 새로운 전성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