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Best movies from last year

marsgirrrl 2013. 1. 9. 15:35

늦었지만 마이 베스트 2012년 영화 정리. '쨘, 나 2012년 영화 정리할 거야'라고 마음 먹었을 때 생각난 영화순. 


아무르 Amour

작은 아파트 안에서 거동도 불편해 보이는 노인들이 만들어내는 느린 호흡의 미니멀한 드라마. 갑작스런 비극을 맞이하는 일상 속에서 삐져나오는 사랑과 슬픔과 공포가 점철된 복잡한 감정들. 선과 악이나 호오같은 그런 단순한 판단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고 2시간 동안 주어지는 그들의 면면에만 의존하며 인간사의 인과관계를 추적하게 만드는 감정 스릴러이자 안티 로맨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을 실천하는 건 거의 성인에 가까운 일. 이 비극의 핵심은 노인의 생존 문제보다는 인간이란 존재가 절대적인 사랑을 행할 수 없다는데 있다. 인생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스포일러랄까. 미카엘 하네케 할아버지, 그렇게 차갑게 보여도 본질은 절대적 사랑을 고민하는 낭만주의자이셨음. 

행여 누군가 노인에 대한 연민으로 '쯧쯧, 저 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고 감상문을 쓴다면, 음, 그건 오만이자 가식입니다. 이 영화는 노인 보호 독려 영화가 아님.


 


이퍼보이 The Paperboy

1960년대 말 플로리다의 시골. 두 신문기자가 보안관 살해혐의로 억울하게 구속된 남편을 취재해달라는 편지를 받고 시골 방문에 나선다. 편지를 쓴 매춘부와 한 마리의 짐승같은 그녀의 남편. 천박한 매춘부에게 첫 눈에 반한 동네 청년. 야심차게 취재에 나서는 백인과 흑인 기자. 막 PC 운동이 창궐하던 시기. 페미니스트들과 아프리칸 아메리칸들 인권을 요구하던 시위가 한창이나 시골 마을은 그런 문명적인 시류와 동떨어져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깨어있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이는 흑인 기자.(그러나 주인공은 아니다) 백인의 지배적인 시선을 비껴나, 오히려 백인의 사회를 '동물의 왕국'처럼 응시하는 낯선 시선. <프레셔스> 리 다니엘스 감독의 시선 전복을 위한 야심찬 시도. 레트로 비주얼과 느린 리듬과 애매모호한 기운 등 모든 게 마음에 드는데, 대부분의 언론에선 혹평을 받았다. ㅠ_ㅠ 



장고 언체인드 Django Unchained

일단 크리스토퍼 발츠 만세 삼창. 발츠 만세, 만세, 만만세! 스파게티 웨스턴을 패러디한 오프닝 크레딧과 음악부터 사랑스럽다. 지붕 위로 치아모형이 흔들거리는 마차를 탄 치과의사 크리스토퍼 발츠가 입을 떼는 순간 이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걸 예감한다. 한마디로 영화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림. 이야기는 얼렁뚱땅 넘어가고 제이미 폭스는 웨스턴 주연으로는 카리스마가 약하지만, 그래도 뭐 어때, 발츠가 옆에 있다. 아내를 찾아 나선 희대의 흑인 총잡이 장고는 막판이 이르면 시원하게 총을 갈기며 악당들을(주로 백인들) 다 죽여버린다. 즐겁고 흥겹고 난리가 끊이지 않는 노예해방 웨스턴. <링컨>은 노예제 폐지가 합법화되는 과정을 엄청 진지하게 다루는데 반해 타란티노는 그냥 다 쏴버리면 그만. 돌아와서 기뻐요, 타란티노, 그리고 발츠 오빠.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 Silver Linings Playbook

아내와 바람핀 남자를 반쯤 죽여놨다가 정신병원에 들어간 중년 남자. 세월이 흘러 고향 부모님 집에 돌아왔으나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불안정. 마침 마을에는 그만큼 버금가는 미친년이 살고 있었으니,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어버리자 회사 및 주변 남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성적 해탈을 시도하는 분이셨다. 서로 더 미쳤다고 아옹다옹하는 중에 꽃피는 미친놈년 로맨스. 근데 이게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 세상에서 비껴났다가 조금 비틀어 다른 궤도를 찾는다는 이야기다. 30대에게 먹힐 수밖에 없다고나 할까. 뒤로갈수록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스타일의 훈훈함을 선사하는 바람에 김이 빠지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미워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동안 시원찮은 코미디만 찍어왔던 로버트 드 니로가 모처럼 내공이 녹아있는 평범한 다혈질 아버지 연기를 보여줘서 더 좋음.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이번에는 데이빗 8 만세 삼창. 초여름 동안 인터넷 세상을 들뜨게 만들었던 영화였는데 너무 빨리 잊힌 듯. 실소가 나오는 작은 구멍들이 흠집이 되더라도, 이 영화의 거대한 아이디어와 화끈한 비주얼이 좋다. 문득 <링컨>이 이 영화에 비해 굉장히 섬세하게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드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스필버그의 보석 세공하는 듯한 자세도 훌륭했지만 리들리 스콧 식으로 굵직한 뼈대를 만들고 스펙터클의 살을 턱턱 붙여가는 방식도 박력 있어 좋다.(건축가의 작업에 가까운 걸까) 덕분에 프로메테우스 스펠링도 외우고. -_-



아르고 Agro 

실화를 다루면서도 실화에서 자유로워보이는 경지. 실화 고증에 대한 (비교적) 무신경함 때문에 영화같은 이야기가 가진 미덕을 영화에 고스란히 집어넣을 수 있었는 듯. 그래서 아르고의 매력은 그냥 순수하게 재미있다는 것이다.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별다른 생각할 필요없이 재미있다고 할 수 있는 영화. 알고 보면 '영화 속 영화' 스타일의 비틀기. 작전 자체가 '영화 속 영화'처럼 들어가 있는 셈. 그 영화의 정체는 SF 영화를 현실 차원에서 재해석한 것. 그러니까 '혹성탈출'의 실화 버전? 미국밖이면 다 외계였던 시절이니까요.(문득 영화 속 SF 영화 'ARGO'의 코스튬을 입고 테헤란 시내를 돌아다는 컨셉트였다면 몬티 파이튼 정도의 코미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타민족에 대해 너무 공격적인 태도겠구나)


더 마스터 The Master

인간을 길들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한 연구(혹은 사이언톨로지)의 무의미함. 인간의 습성을 일목요연하게 나눠서 치유하려는 자가 있지만 정작 영화가 보여주는 메인 캐릭터는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없는 동물같은 존재. 그도 그 자신을 모르고 관객도 몰라. 그래서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더 허무해지는 모순적 상황. 인간도 광대하고 자연도 광대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 70밀리로 촬영해서 마음은 더 허해짐. 막판에 프로이드를 지지하는 듯한 암시가 있지만 영화의 결론은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  


* 이외 내 맘대로 시상식 

뉴 클래식상 : 만듦새의 개벽을 가져왔다는 의미. 특히 장르의 현대화에 노력한 영화들.

- 레미제라블 / 뮤지컬은 클로즈업으로  

- 라이프 오브 파이 / 3D 영화의 진화순서 : 아바타-휴고-라이프 오브 파이

- 링컨 / 스필버그의 '시민 케인'


* 자기복제 도전상 

- 문라이즈 킹덤 / 웨스 앤더슨의 스타일로 '미치광이 삐에로'를 만들려는 노력. 고다르의 반사회적 퍼포먼스 대신, 보이스카웃과 집 탈출이 목표인 소박한 누벨바그 동화. 

- 클라우드 아틀라스 / 워쇼스키 남매는 이제 매트릭스에 벗어날 때가 됐지 말입니다. 워쇼스키 부분은 거의 다 진부하고 재미없지 말입니다.


* 양아치상 - <러스트 앤드 본>의 막장 아빠 알리

* 귀요미상 - <장고 언체인드> 크리스토퍼 발츠 

완벽재현상 - <링컨> 대니얼 데이 루이스, 연기를 잘 한다 이런 말도 안 나와. 그냥 링컨이 거기 있음.

* 늙은 젊은이상 - <더 마스터> 왓킨 피닉스, 20대라 우기지 말자. 

* 이구역의 미친년상 - <실버 라이닝스 플레이북> 제니퍼 로렌스

* 이구역의 미친놈상 - <페이퍼보이> 존 쿠잭

* 궁금해 먹거리상 - <어벤저스> 슈와마

* 개죽음상 - <닥나라> 베인 

* 조연상 - <라이프 오브 파이> 리처드 파커


정리하고 보니 내가 여자 배우들을 별로 안 좋아하나.

못 본 영화 <제로 다크 서티> <홀리 모터스> <비스트 오브 더 서던 와일드>

추가 언급할 영화는 키아누 리브스가 여러 감독들과 영화인들 만나며 영화의 현재와 미래에 흥미로운 문답을 주고 받았던 다큐멘터리 <사이드 바이 사이드> 

좋았던 한국 영화는 <범죄와의 전쟁>...하나인가? 본 게 없다. 아시아 영화들도 거의 못 봤으니 완전 편중된 베스트. 


'영화란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만든 2012년의 영화들. 미국 영화계의 엄청난 풍년으로 기억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