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live

St. Vincent & David Byrne @ Williamsburg Park

marsgirrrl 2012. 10. 9. 15:57


* 만사가 귀찮다며 퍼져있던 자신을 추스리고자 졸린 눈 비벼가며 억지로 블로깅. 


심드렁하게 늘어져있던 중에 비까지 오는 토요일이었다. 세인트 빈센트와 데이빗 번이 앨범이 낸다는 정보를 접하기도 전, 아마 늦봄쯤에 샀을 둘의 조인트 공연 티켓. 언제나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그 날은 기어이 오고 말았고, 하필이면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같이 가겠다고 약속한 남편님은 시험공부로 인해 가기 싫다고 거부 반응을 일으켰지만, 50달러가 넘는 티켓값을 무기삼아 설득에 설득을 거듭해 브룩클린 윌리엄스버그 공연까지 휙 날아가는데 성공.(차를 끌고 가면 20~30분 거리가 대중교통을 타면 1시간 반이 걸리는 미스터리 행로)


티켓엔 도어 오픈 시간이 6시 반이라고 써 있으니 아마도 공연은 한두 시간 지나 시작할 터. 공연 좀 다녔더니 이젠 미국 분들의 시간관념을 대충 익히게 됐다. 그리하여 7시 반에 도착했으나 역시 공연은 시작할 낌새도 안 보이고. 사람들은 뒤쪽에 위치한 음식 코너에서 밥 사먹느라 웅성웅성. 보통 입장하면서 신분증 검사하고 알콜 구매 가능한 종이 팔찌를 채워주는데, 이 날은 따로 작은 부스를 만들어 신분증 검사. 때문에 밖에서 술을 먹겠노라는 일념으로 공연장 온 분들이 끝도 없는 줄을 서 있었다.(미국에선 술 파는 장소가 아닌데 공개된 장소에서 술 먹는 게 불법. 야외 공연에선 모처럼 밖에서 술 먹는 게 허락됨. 그러나 맥주 한 잔 가격이 기본 8달러 이상 ㅠ_ㅠ)

  

공연 보기 전 배를 채운다고 먹을 거리를 살펴보니 모두 10달러 이상의 가격. 이제는 바가지 가격이 놀랍지도 않아서 그나마 양 많아 보이는 메뉴를 골라 대충 배를 채웠다. 그래서 공연 시간보다 일찍 오면 먹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경우가. 잘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경우도 발생. 티켓은 20달러인데 밥먹고 맥주 마시면 바로 그 가격. 거기다 기념품까지 사면 예상치 못한 초과지출 발생.


대구튀김 버거를 팔았던 곳의 이름은 '본 초비'



윌리엄스버그 공원의 단순무쌍한 무대



아무튼

8시가 넘어 드디어 세인트 빈센트와 데이빗 번, 그리고 뒤로 브라스 밴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는 그친 상태에서 약간의 습도를 머금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그 사이로 울러퍼지는 트럼펫 및 관악기 사운드. 비오는 날 트럼펫 사운드에 약한 나는 이미 황홀해하며 환상의 나라로 빠져들어가고 있고.

토킹헤즈의 리더이자 보컬인 데이빗 번을 그리 잘 알진 못한다. 세인트 빈센트의 'Strange Mercy' 앨범이 너무 좋아서 어떻게든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공식 공연은 다 끝난 상황이었다. M83 예매하다가 난데없이 세인트 빈센트와 데이빗 번 공연이 튀어나왔고 반가워서 바로 구매 클릭하는 바람에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게된 것. 그런데 가을밤 브라스 밴드라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네.

게다가 데이빗 번 할아버지. 맨손체조같은 안무를 세인트 빈센트에게 전수하며 흥겹게 무대 위에서 돌아다니는 귀여운 매력에 바로 반해버렸다. 이건 뭐 움파룸파 장신 버전도 아니고요. 할아버지가 이렇게 귀여운 몸짓으로 관중을 흥분시켜도 되는 겁니까. 52년생이면 울어머니 또래시니 할아버지라고 하면 안되려나. 

그리고 세인트 빈센트 언니(사실은 동생)의 카리스마는, 반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정도. 두 분은 각자 노래 부를 때마다 옆에서 알아서 흥을 맞췄다. 특히 데이빗 번은 세인트 빈센트가 자기 노래 부를 때마다 각종 안무와 브라스 밴드와 매스 게임을 선보이며 시선을 뺏어감. 이런 공연의 달인들 같으니라고.

세인트 빈센트 팬이신 옆에 계신 분의 한마디. "사람이 완벽할 수 없구나. 세인트 빈센트 진짜 뻣뻣하게 춤춘다." 네, 빈센트 언니는 의외로 몸치였습니다.   


솔직히 둘이 함께 만든 앨범 'Love this giant'는 약간 그로테스크한 뽕짝(?) 분위기여서 마음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건 아니였다. 음악적 콜라보를 통해 새로운 미학을 추구한다기보다는, 마음은 맞지만 음악경향은 좀 다른 이상한 두 존재가 흥미로운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차원이랄까. 하지만 음악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컨셉 앨범이라는 티가 좀 많이 나긴 했지만. 그런 두 분이 무대에 나란히 서서 맨손체조급 댄스로 이뤄진 퍼포먼스와 함께 앨범 곡들을 들려주는데 의외로 조화로웠다. 브라스 밴드가 만들어내는 흥겨운 사운드가 앨범의 그로테스크 분위기를 서정적이고 동화적인 느낌으로 바꿔놔 버렸다. 세인트 빈센트의 히트곡들도 간간히 브라스 곡으로 재해석됐는데, 그 정겨운 사운드에 마음이 목가적 상태로 막 세탁되는 기분. 막판에'Cruel'로 마음은 또 설레이고. 


이날 특히 흥미로웠던 건 관중들. 토킹 헤즈 팬이었을 중년 분들과 브룩클린 어린 친구들이 어울러져 토킹 헤즈의 히트곡 'Burning down the house'를 떼창.(모두 이 곡만을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미친 분위기가 조성) 게다가 다른 공연들과 달리 술 먹고 무개념으로 떠드는 팬들도 없는 아주 바람직한 관람 풍경. 어르신들은 대체로 점잖게 서서 점잖은 평가의 말들을 종종 주고받으심. 이렇게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진 공연은 또 처음이라 신기해함. '할아버지, 할머니. 옛날에 비트족이었어요?' 뭐 이런 거 물어보고 싶었다. 토킹 헤즈와 비트족은, 음, 상관이 없나?

옆에선 90년대 그렉 아라키의 '둠 제너레이션'에 튀어나온듯한 90년대 코스프레 청년이 풀을 한 대 말아서 사방으로 돌려대고. 그러나 바로 옆에 있던 우리에게만 권하지 않아 "왜 우리에게는 안 줬을까? 동양인이라서?" 등의 인종차별적 의문을 갖게 만들고. 옆분은 "물론 줘도 더러워서 거절했겠지만"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임. 나야 뭐, 스스로 환각물질을 생산하는 기능이 있는 인간이라. 


커튼콜처럼 인사하는 분들. 카메라가 후져서.


좀 더 좋은 사진을 가져와서 기억을 재구성. 출처는 Brooklyn Vegan


귀여운 번 할배와 요염한 빈센트양

손 올리기 안무, 핫둘!

관현악단이 이리저리 대형 만들어 부산하게 움직이며 지루함을 방지


세인트 빈센트는 10대 시절 '리벤지 오브 너즈(Nerds)'에서 토킹 헤즈를 처음 알게 됐다고. 놀림받던 모범생들이 'Burning down the house'를 미래 분위기 의상 입고 부르는 장면이 나옮. 데이빗 번은 각 연주자들의 이름과 밴드 프로젝트 및 요즘 하고 있는 일을 다 외워서 소개. 대부분이 약간 이름있는 다른 인디밴드를 겸하고 있는 분들이라서 놀랐다. 튜바, 호른, 색소폰, 트럼펫, 트럼본 등 다양한 관악기 중, 마지막에 가장 큰 박수를 받은 건 튜바 연주자. 


윌리엄스버그 공원은 공사장같은 분위기의 콘크리트 바닥 공원이었지만 나름 뒤쪽으로 맨하탄 뷰도 살짝 보이고 해서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야외에서 재미있는 공연을 보고 나니 모처럼 마음이 들뜨고. 모처럼 밤에 마실 나와 강바람을 맞으며 카리스마 넘치는 공연을 보니 울적했던 마음이 그나마 회복.(요새 소셜 라이프의 부족으로 상시 울적 모드) 여름에 센트럴파크에서 M83 공연을 보긴 했지만 음악소리도 작게 들리고 사방에서 수다를 쏟아붓는 최악의 환경에서 관람해서 그런지 공연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50달러면 인디 공연치고 꽤 비싼 가격인데 부가적인 공연 시스템이 더해진 것 같지 않다. 비교하자면 베이루트가 17달러였고 걸즈가 30달러 정도 했나? 멀리서 뮤지션 얼굴 볼 수 있는 스크린 하나 없고 분위기 띄울만한 영상 하나 영사되지 않고. 덕분에 두 뮤지션의 움직임에만 집중할 수 있었지만. 사실 공연이 황홀해서 가격에 대한 불만은 없었는데 사진 찾으려고 몇 곳을 기웃거리다보니 티켓값이 비쌌다는 말들이 좀 있더라. 너나 나나 돈 아껴서 힘겹게 공연보는 사람들.  


데이빗 번 아저씨 즐거운 모습에 삶의 영감같은 걸 받은 것같기도 하다. 워낙 토킹 헤즈 시절부터 희희낙락 하셨던 분이긴 한데 나이들어서도 체력 보전하며 신명나는 한마당 만들어내는 모습이 굉장히 감동적. 재미있게 사는 게 삶의 목표인 나로선 믿고 따라할 분. 


  

Brooklyn Vegan에서 가져온 Weekend in the du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