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삼천포

06132012 단상들

marsgirrrl 2012. 6. 14. 12:55

1. 이젠 06/13/12로 쓰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한국식 날짜 표기가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


2. 자연스러워지는 게 점점 많아진다. 처음엔 장볼 때마다 놀랐던 물가도 이제는 완전히 익숙하다. 3달러짜리 바케트도 덥썩 사버린다. 2.25달러의 지하철과 버스 요금이 싸다며 하루에 몇 번씩 이동을 한다. 아침을 위해 빵과 쥬스와 씨리얼을 꼭꼭 챙겨놓는 습관. 주말엔 차를 타고 어딘가로 놀러 가야한다는 의무감까지. 살다보니 이렇게 살아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살았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진다.


3. 그러나 트위터 때문에 한국도 미국도 아닌 림보같은 데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


4. <왕좌의 게임> 2시즌 마지막회를 보고 나서 마음이 허해졌는데 프로메테우스 데이빗이 뿅 튀어나와 스타크니, 라니스터니 하는 애들을 다 잊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서방은 <프로메테우스> 단발머리 여자과학자가 캐틀린의 동생이자 아린 왕국의 여왕이었다며 어떻게 못 알아볼 수 있냐고 구박을.


5. 6월 반이 지나는 동안 <문라이즈 킹덤> <프로메테우스>를 봤고 <에일리언> 시리즈를 복습했고 <샤이닝>과 <마터스>를 어쩌다 재감상. 웨스 앤더슨이 <샤이닝>에서 가져온 듯한 장면을 발견하는 의외의 성과를. 동시에 웨스 앤더슨은 죽어도 공포영화를 못 만들 것같다는 생각도. <에일리언>은 명작이었고 <마터스>는 다시 봐도 좋았다. 오랫동안 선배들이 쌓아온 영화 문법들이, 비록 느리긴 해도, 인간이 영화를 영화로서 음미할 수 있는 정점을 찾았는데 우리는 그 역사를 '스타일'이란 단어 아래 다 갖다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고전들을 좀 찾아봐야겠다. 이래놓고 눈 홀리는 영화 있으면 멋지다고 빨려 들어가겠지만.


6. <프로메테우스>는 여러가지 생각을 낳게 만들는 지속적인 재미를 재생산하는데, 오늘의 생각 포인트는 영화 속 인간들의 행동은 어이없을 정도로 예측가능한데 반해 엔지니어들과 데이빗의 속은 오리무중이라는 것. 그래서 자꾸 그들 행동에 관한 실마리를 악착같이 찾게 만든다는 것. 스콧 할배의 인터뷰를 읽고나니 엔지니어의 마음은 인간 심리 이상의 것이라 인간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DNA를 남긴 것부터 희생인지 실험인지 의식인지 알 수가 없는데. 홀로그램 행성 지도를 보고 좋아하는 데이빗 마음은 프로메테우스를 본 관객의 마음과 비슷하려나. 그리고 또 하나. 노화에 대한 포인트. 나이들어갈수록 생기는 집착은 더 나이들어봐야 이해할 수 있겠지. 


7. 체감하는 뉴욕의 유행 중 하나는 그리스 요거트. 원래 몇 개의 브랜드가 있었는데, 그리스 시망과 상관없이 그릭 요거트 붐이 일면서 너도 나도 제품명에 '그릭'을 붙이기 시작. 이젠 요거트 코너에 가면 반이상이 그릭 요거트. 특징은 기존 요거트에 비해 훨씬 뻑뻑한 질감이라는 것과 비싸다는 것. 늘 "요거트도 치즈도 그리스가 터키 것 다 훔쳐갔다"고 주장했던 터키 친구의 멘트를 생각해보면 터키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물론 그리스 친구는 그 반대로 말헸음. 세르비아 친구는 "맞닿아 있는 나라들이라 음식 문화가 비슷한 것"이라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입장 표명) 

 

8. 마이크 블룸버그 뉴욕 시장이 16온즈(약 500ml) 소다 음료 판매를 제안하는 법을 상정. 소다를 비만의 최대 적으로 규정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뉴욕시민들은 미국인치고 적당한 몸매를 유지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른 비만 비율이 50퍼센트가 넘는다고. 뉴욕커 1/3이 하루에 한 병씩 소다를 마신다고 한다.법으로 정해지면 앞으로 뉴욕 레스토랑, 델리,패스트 푸드점, 극장 매점, 경기장 매점에서 16온즈 이상 사이즈 소다 및 설탕 과다 함유 음료수를 팔 수 없게 된다.(우유 베이스 음료수와 과일 주스는 제외) 시민들은 대체로 두 가지 입장. "나라가 왜 개인의 먹거리 자유를 제한하는가"라는 것과 "나서서 규제해야 한다"는 것. 근데 애네들이 소다를 많이 먹긴 한다. 16온즈면 스타벅스 그랑데 사이즈인데 극장 가면 이 사이즈가 거의 스몰 수준. 다들 팔뚝 길이만한 거대한 소다컵을 들고 영화를 본다. 패스트푸드점도 마찬가지. 수퍼마켓에서는 물이 아니라 소다 몇 박스를 사들이는 가족도 목격. 이 중독을 끊기 위해 법으로 정할 정도라니 시민 입장이라면 좀 부끄럽겠다. 우유 베이스 50퍼센트 이상이면 면제 대상이라 스타벅스의 행보를 궁금해하는 기사도 났다. 근데 커피 설탕은 개인이 알아서 넣는 거 아님? 스타벅스는 소금 범벅인 델리 메뉴들 좀 개선 했으면.

블룸버그 시장은 먹거리 규제에 대한 관심이 많은 듯. 그가 시장으로 있는 동안 식당에서 트랜스 지방(일명 마가린) 사용 금지, 레스토랑과 공연 금연, 레스토랑 문 앞에 위생등급 붙이기 등의 규제를 만들어냈다. 레스토랑 소금 사용에 대한 규제도 있었다. 부자 시장이 주변 부자들의 건강한 음식 강박에 영향을 받아 그런 거 같다는 댓글이 흥미로웠다. 시장의 별명은 차 놔두고 굳이 뉴욕 지하철로 출근한다고 하여 '메트로카드 마이크'.  


9. 아델의 <21> 앨범 빌보드 24주간 1위 기록. 68주 동안 10위권 내. 미국에서만 934만장. 올해엔 350만 장이 팔렸다는데 아직도 팔리고 있다니 놀라울 뿐. 54주간 1위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트랙이 1위계에서 최고라는 것에 더 놀람. 2위는 37주간 1위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앨범. 


10. 계속 서울에 머물렀으면 잘 살았을지 자신이 없다. 트윗으로만 세상을 엿보고 있으면 뭔가 패러다임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든다. 대충 살아서는 안 되는 사회같다. 주먹구구 임시방편의 삶의 태도가 완전히 막을 내린 듯한 고밀도 지식 기반 사회. 아니면 내가 너무 선생님들만 팔로하고 있나? 혹은 그 지식의 탑을 쌓지 못한 사람들은 날마다 멘붕. 무시하고 살거나 사이코패스로 살거나. 뭐 그런 상황. 매일매일 변화를 감지할 때마다 나는 예전 그 자리에서 늙어가고 있다는 자괴감이 약간 생긴다.


11. 요즘엔 비치 하우스가 제일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