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live

Pulp@Radio City Hall

marsgirrrl 2012. 4. 13. 14:52

살다보면 가끔씩 남들이 비웃을지 몰라도 결연히 행해야 하는 일이 있다. 이를테면 2012년 펄프 콘서트가 그렇다. 셋리스트는 거의 Different Class의 곡들. 추억을 되새기는 디너쇼 타임의, 한 물간 전설의 밴드가 등장하는, 전혀 쿨하지 않아 보이는 상황이지만 나는 펄프의 공연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오픈 당일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인터넷 예매 전선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펄프야말로 '너와 나의 20세기'이니까. 술에 취해 바 한 가운데서 '디스코 2000'과 '커먼 피플'의 스텝을 밟았던 그 20세기말.

데보라는 그 예쁜 가슴을 가지고 왜 그렇게 막 살아야 했는지, 조각 전공하러 영국 온 그리스 소녀는 어쩌다 커먼 피플과 자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는지, 모든 게 가소롭고 마땅찮고 웃기지도 않았던 나의 20대에 펄프가 있었다.


티켓 전쟁 끝에 힘겹게 구한 좌석은 2층의 오른쪽 구석. 1층 앞무대로 가고 싶었으나 가격이 무리였고 게다가 남아있는 표도 없었다.(티켓마스터에서 예매하면 보통 랜덤으로 좌석을 골라주는데 이 날은 매진을 앞두고 어떤 자리든 있다면 빨리 결제해야 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장소는 라디오시티. 연말의 산타복장 언니들이 단체로 춤추는 'Rockets' 쇼로 유명한 곳이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까지는 티켓 파워가 못 미치는(그러니까 마돈나급은 안 되는), 그러나 인지도는 높은 그런 뮤지션들이 주로 공연을 하는 곳이다.



보통이면 그냥 지나치는 기념품 샵에서 가방도 20달러 주고 하나 사버렸다. 검은색이라면 전혀 착용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검은색 가방을 구입. 30달러 티셔츠도 죄다 검은색. 앨범 자켓을 크게 인쇄한 프린트는 25달러. 바가지의 물결 속에서 그나마 실용적인 건 가방뿐. 지를 걸 대비해서 현금을 넉넉히 가져갔는데 기대보다 살 수 있는 아이템이 적었다.



밖에는 이런 사진이 붙어 있었으나,


원본은 이것.


그러나 우리 모두 진실을 알고 있죠. 펄프는 더 이상 저 외모가 아니라는 걸.

그로부터 약 15년 뒤, 저비스는 이렇게 변했습니다. 아, 눈물이.

from Prefix by Ebru Yildiz

1995년에 글래스톤베리에서 '커먼피플' 앞다마를 같이 깔 수 없었던 팬은, 참으로 짓궂게도 펄프가 더 이상 커먼피플로 명명될 수 없는 시점에서야 만날 수 있게 됐다.

저비스는 마흔이 넘었고, 나는 서른이 넘었는데, 20대의 내러이션같은 노래들로 가득찬 Different Class를 떼창한다는 건 뭔가, 적절치 않은 듯 했지만, 저비스는 무대 위에 등장하자마자 그딴 논리는 필요없다는 듯 변치 않은 발길질을 해대며 'Do you remember the first time?'으로 타임머신의 포문을 열었다.


뒤에서 반짝이는 'PULP' 사인. 변함없이 수트를 차려입은 저비스 콕커. 묵묵히 연주를 하는 마크, 스티브, 닉. 그러나 바이올리니스트는 동양인으로 바뀌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펄프의 소싯적 퍼포먼스만 보고 저비스가 굉장히 시니컬한 멘트를 날리는 까칠한 남자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글래스톤베리에서 위스키 잔을 들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주절주절 말을 해대는 그를 기억한다면.

그러나 나이탓인지, 원래 그런 존재였는지 알 수 없는데, 저비스는 거의 스탠딩 코미디언에 가까운 존재감을 보여줬다.

노래 사이사이마다 다정한 멘트를 지속적으로 날리고 독자적인 발차기, 개다리, 트위스트 춤을 춰대는 광대와 같은 보컬이었다.

주요 멘트들을 적어보자면,(좀 우물거리는 느린 속도로 읽어줘야 함)


"여러분 안녕. 

유서깊은 라디오 시티에서 공연해서 영광이야. 여기 음향이 참 좋은데. 그게 어떤 기분이냐면. 런던 거리에 비 많이 오고 습한 날에 연주하면 나오는 소리가 나, 여기가."


"뉴욕에 오면 당연히 브룩클린 라거를 주문해야지."


"고맙다고 하지마. 우리가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지. 와줘서 고마워."


"14년 전에 우리가 해머스타인 볼룸인가 거기서 공연했는데, 근데 거기 아직도 있어? (예스!!!) 있다고? 그때 왔던 분들 손들어 봐요. 오오, 정말 고마워."


"(펜슬 스커트 전에) 거기 위쪽 발코니 분들 안녕. 거기 여자 있어요? 펜슬 스커트 입은 여자 있어요? 정말 훌륭한 옷이에요. 펜슬 스커트."


"(아이 스파이 전에) 내가 다 훔쳐보고 있어. 지금도 내가 사람들을 훔쳐 보면서 노래를 만들고 있다고." 


"나는 계속 모서리에 머무르려고 해. 왜냐면 중심이 더 잘 보이거든."


"2000년 하고도 12년이 지나서 이제는 아주 먼 옛날이 됐지만. 그때는 2000년이 신기했어.(디스코 2000 시작)"


"(리처드 베리의 Louie Louie를 연주하며) 리처드 베리에게 정말 감사해야 해. 이 리프가 없었다면 정말 수 많은 노래가 없었을 거야. 쓰리 코드를 가지고 만든 노래인데 정말 훌륭하지. 쓰리코드만으로도 곡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랍지 않아? 우리도 여기 영감을 받아 쓰리 코드 노래를 만들었었어.(Babies 연주 시작)"


"(바 이탈리아 끝나고) 바 이탈리아 근처에서 쓴 또 다른 노래가 있어. 그러니까 바 이탈리아 어디어디로 가면 무슨무슨 로드가 나오는데. 내가 여기서 런던 지리를 말해봤자 뭐 알겠냐마는. 암튼 그 로드에서 어디어디 쪽으로 꺾으면 나오는 게 세인트 마틴 컬리지야. (다들 커먼피플을 예감하고 와와와와!!!) 내가 아주 오래전에 예술 학교 다녔거든. 그때 바에서 여자를 만났는데 걔가 그리스에서 왔었어.(와와와와!!!) 그때 노래야.(커먼 피플 시작)"


"(필링 콜드 러브 공연에 댄스 그룹 등장) 뉴욕이라서 댄스 그룹이 특별 출연했어.무용단 대표 누구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줘요. 여기가 로켓츠 쇼도 하는 데잖아. 근데 로켓츠는 아니지만." 


"관계는 어쨌든 끝나기 마련이거든.(노노!) 아니야. 너 남친 여친이랑 끝까지 갈 거 같아? 안 그렇다고. 관계는 끝난다고. 그래서 우리가 이런 노래들을 만든 거잖아."

 

"어쨌든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죽지 않고 살아 있잖아."


요즘 콘서트에 비하면 영사되는 영상들은 그다지 신선한 게 없었다. 오히려 조명을 연극적으로 쓰는 게 노림수. 주인공은 저비스 코커였다. 사실 뭔가 매끈한 영상이 배경으로 영사됐다면 주의만 산만해질 뿐이었다. 호스트 저비스 코커의 끝없는 수다와 독특한 댄스만으로도 절로 주목이 됐으니까. 저비스의 댄스는, 정말이지, 내가 지금껏 본 역대 브릿팝 밴드 중에서 가장 호탕하며 유쾌했다. 말발 또한, 말없었던 데이먼(블러)과 시큰둥했던 노엘(오아시스), 약에 취한듯 돌아다녔던 크리스 마틴(콜드플레이) 등등에 비하면, 이건 뭐 수다맨이 따로 없어. 게다가 다정해. 저비스씨, 시니컬하지 않고 다정하고 친절하다니. 아, 인식의 대혁명이 벌어졌다. 설마, '돌싱'되고 나서 변한 건 아니겠지?



저질 카메라로 찍은 몇 컷.

필링 콜드 러브. 댄서들과 함께. 노이즈의 압박.

뒷 영상은 좀 구리지만, 미스 쉐이프였던가.잘 찍은 사진으로 확인해보니 신발 굽이 높아


네번째 곡인가 '디스코 2000'이 터져나왔다. 지치지 않나 걱정했는데 저비스는 열아홉번째 앵콜곡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저비스씨, 무슨 운동하냐고 물어보고 싶은 기분.

주옥같은 '디프런트 클래스' 앨범의 전곡과  다른 앨범에서 한두곡을 불렀고 역시나 기다렸던대로 마지막 곡은 'Common People'. 'Poor is cool'이라 말하는 여자애를 병맛이라고 킬킬거렸던 우리는 여전히 그 계급인가, 아닌가. Something Changed지만 그래도 커먼 피플은 떼창이 제맛. 여자친구인지 친구인지 초대권 친구인지를 따라온 사람들이 묵묵히 주변을 장악한 가운데, 나 혼자 신나서 커먼 피플 가사를 바락바락 외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말았다.(옆에 옆에 남자 첫번째 노래 듣고 왈, "애네 좀 클래쉬같네?") 아, 이게 아닌데. 다 함께 불러야 하는데, 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알게 뭐람! 유 네버 두 왓에버 커먼 피플 두! 속성으로 연습했던 커먼피플 뮤비의 저비스 중간 댄스는 앞부분을 살짝 놓쳐 버렸어!



그나마 가까울 거라 생각했지만 발코니 2층은 꽤 먼 거리였다. 무대 양 옆으로 스크린이 달려 있었지만 한 번도 켜지지 않았다. 촬영을 마다하는 펄프측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므로 얼굴을 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중간중간에 발코니석 계단을 따라서 저비스 코커가 양 사이드 윗쪽으로 이동하면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정도. 게다가 라디오 시티 음향은 너무 단정했다. 요새 작은 공연장에 가면 귀가 멀어버리는 나로서는 최상의 공연장이긴 했다. 귀는 전혀 안 아프고 음은 또렷하게 들렸다. 하지만 1층에서 봤으면 좀 달랐을까. 공연을 보는 내내 좀더 강렬한 열기에 휩싸이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지질 않았다. 사실은 눈물이 쏟아질 거라 생각했다. 공연 앞두고 몇 년 만에 펄프 앨범을 들었더니 완전히 감상 모드가 되어 버려서.


왠지 기대보다 덜 신났던 공연이었다. 목석같았던 이웃 관중들 탓을 하다가, 20대에 봐야할 걸 너무 늦게 봤다는 생각도 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펄프 노래를 들었다. 웬걸. 예전에 들었던 그 느낌의 노래들이 아니다. 저비스의 깜찍 중년 퍼포먼스의 기억이 뒤섞여서 훨씬 더 개인적으로 친근한 곡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친구가 만든 곡들을 새삼스럽게 듣는 기분이랄까.


1990년대 후반.

펄프를 들을 때는 항상 내 옆에 JP가 있었다. 그녀와 함께 '디스코 2000'과 '커먼 피플'을 따라 부르며 춤을 췄다. 그 당시 우리가 행복할 수 있었던 방법은 그게 전부였다.(Nothing else can do) 2000년이 되면 어떤 세상이 올지 반신반의하며 기다리던 시대였다.

그때 펄프가 내한공연을 했더라며 나는 당연히 JP의 손을 잡고 공연을 보러 갔을 것이다. 아마도 동시대의 환희를 경험하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겠지. 그러나 그런 일을 벌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펄프는 잊혀졌고, 저비스의 솔로 앨범은 그지 같았다. 90년대 애들은 하나같이 맛이 가고 있었다.

누가 살아남았는지 생각해본다. 여전히 1995년의 감성을 리바이벌하고 있는 펄프. '살아있다'고 말한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축복해야 하는 세대.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라도 들어보자며 갔던 콘서트가 제대로 향수를 건드렸다.

트윗으로 4월 11일 총선에 대한 실망감이 전염되던 날,

쌓여있던 향수병이 폭주하고,

거기에 JP과 함께 했던 시대에 대한 그리움마저 폭발해서,

걷잡을 수 없는 멘탈 붕괴가 벌어지고 있다.


반쯤 취한 상태로 맡았던 새벽공기가 그리워.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밤의 대화들이 그리워.


Oh, let's get out of this place,

before they tell us that we've just died.
Move, move quick, you've gotta move.
Come on it's through, come on it's time.
Oh look at you, you,
you're looking so confused,
just what did you lose?




그래도 뭐 좋다고 웃고 있고요




p.s. 펄프 트윗에 그리스 공연 좋았다고 남겼던데, 그리스에서 온 그녀 앞다마를 현지에서 다 함께 나눴단 말인가. 그리스의 그녀는 왔을까나.


p.s 2 가까이 왔을 때 줌으로 찍어본 저비스. 가장 큰 비명 소리는 누구의 것이겠는가.


p.s.3 좀 섭섭하니 남의 사진을 몇 장 더 추가해보자.


발차기 순간 포착


디스코 2000 때인 듯.


p.s 4 코첼라 영상을 보다가 무대 위에 눕더니 다리 세워서 몇 초간 다리 찢기 하던 기억이 났다. 무슨 무대 매너가 그래!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