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Happy 2012

marsgirrrl 2012. 1. 1. 15:34
2011년 12월 31일.
어제 엘름허스트 최고 반미 샌드위치집이라는 'Joju'에서 사온 반미 샌드위치로 아침을 부랴부랴 먹고
10시 기차를 타고 타임스 스퀘어 근처 극장으로 가서 'The girl with dragon tattoo(한국명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보려고 했으나
밖을 나오니 춥지 않다 못해 더운 날씨인줄 모르고 껴입고 나온 옷차림이 부담스러워 다시 집으로 컴백.
보고 싶었던 '밀레니엄'을 12시가 넘어서야 볼 수 있었다.
 
'밀레니엄'을 보고 나와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 예고편.
3시 반에 목적했던 그리니치 빌리지의 브런치 식당인 'Tartine'으로 이동해서 뒤늦게 일몰 시간대에 브런치를 먹었다.
"이건 브런치가 아니야! 차라리 런-디너라고 해야할까?"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에 먹을 만한 브런치를 냠냠 먹으면서 영화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뮤직비디오처럼 찍은 오프닝이 괜한 무리수였다는데 동의.(감독님, 문득 뮤비를 찍고 싶었나?)
나는 핀처의 밀도 높은 연출에 비해 원작이 청소년용 소설이라 그런지 이야기가 비교적 술술 풀린다는 이야기를 했고
서방은 핀처의 연출이라고 느낄만한 무언가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또 나는 루니 마라가 연기한 리즈베스가 뭔가 부족하다, 좀 더 반사회적이고 고립된 아우라가 부족하다고 했고
서방은 그건 영화에서 그녀의 룩이 너무 스타일리시하게 비춰져서인 거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나는 이 영화에서 '조디악'의 흔적을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보며 그리니치 빌리지는 역시 예쁜 동네다, 그런데 집세가 엄청 비싸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서방이 한 번 맛보고 놀랐다는 커피집 'Roast Plant'로 이동. 연말에도 근처 커피점에 나와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커피 한 잔 앞에두고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는 동네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스타벅스가 그나마 우월한 커피로 통하는 미국 커피 애호 세계에서 모처럼 풍미가 느껴지는 커피를 맛보고 만족. 동네에 이런 커피점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지만 그전에 그런 커피맛과 가격을 포용할 수 있는 동네 정서가 필요한 것을. 파리 바케트와 고려당 커피가 최고로 대접받는 우리 동네에선 무리수.

막날을 부지런히 보내려고 밀린 숙제하듯 바쁘게 움직이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6시가 지나 컴컴해진 저녁. 한국 수퍼에 들러 꼬꼬면과 나가사키 짬뽕을 발견하고 바로 집어들고 계산.
TV에선 새해를 준비하는 타임스 스퀘어 콘서트를 중계하기 시작.
수퍼에서 사온 밤을 삶고 나서 갑자기 밤을 까기 시작하는 서방.
옆에 앉아 같이 밤을 까면서 "한해 마지막 날에 밤을 까는 건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니
"인생은 밤을 까는 거라 할 수 있지"라며,
내가 저스틴 비버가 'Let it be'를 부르며 삑사리를 내는 것에 투덜거리자
"세상의 모든 잡음을 잊고 밤 까는데 집중하며 마음을 추스리자"고 반농담.
"이렇게 열심히 까놔 봤자 알맹이는 이것밖에 안 되고."
"그래도 알맹이는 남으니까."
"먹어버리는 시간에 비해 공들이는 시간이 너무 많은데."
"인생이 그런 거지, 뭐."
같은 밤까기 농담반 선문답이 오갔다.

뭐랄까, 한 해 동안 삶을 잘 산 건지 어쩐 건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그다지 알고 싶은 것같지도 않다.
2011년에 벌어졌던 몇 가지 일들이 기억나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억나지 않는 순간들이 소중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똑같이 내가 행하고 살아온 순간들인 것을.
기록되지 못한 채 잊혀진 것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다 똑같이 열심히 한 하루인데 뇌용량 한계로 증발해버렸다니 아깝잖아, 라는 경제적 구두쇠 마인드가 기억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2012년에는, 모처럼 세계멸망설도 있고하니, 꼼꼼하게 삶을 정리해 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뉴욕인지 미국 애들의 새해목표 1순위가 '삶을 잘 정리하고 사는 것'라는 리포트가 있는 걸 보니 이거 세계적인 혼란인 거 같기도 하고.

새해를 몇 분 앞둔 시간에 씨로가 나와 존 레논의 'Imagine'를 불렀다. 이 노래가 새해 노래로 어울린다고 느낀 건 처음이다.
미스 유니버스만 희망으로 '월드 피스'를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이매진이라도 하고 사는 2012가 되길 바라며.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