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험

두번째 맞는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

marsgirrrl 2011. 4. 23. 13:51

4월 20일 10회 트라이베카 영화제가 캐머런 크로의 <더 유니온>으로 개막했다. 엘튼 존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그의 소싯적 우상이었던 레온 러셀과 콜라보 앨범을 만드는 과정을 다룬다. 엘튼 존 공연까지 곁들여진 무료 상영이었지만 입장 팔찌를 받으려면 아침부터 죽치고 있어야할 것 같아 포기했다. 프레스라고 입장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트라이베카 영화제는 좀 알려졌다시피 로버트 드 니로와 영화산업계 친구들이 9/11로 마음 다친 뉴욕커들을 위로하고자 만든 영화제다. 시대의 걸작을 발견하겠다는 엄청난 포부따위는 없고 슬로건이 그냥 '이웃 영화제'다. 올해 <뉴욕타임즈>는 이 영화제의 정체성을 논하면서 선댄스와 칸영화제에 끼어있는 시기를 지적했다. 다시 말해서 날고 기는 미국 독립영화는 선댄스로 가고, 세기의 걸작들은 칸으로 향한다. 게다가 바로 직전에 모마에서 하는 신인감독 영화제 '뉴디렉터/뉴필름'(홀의 다큐를 봤던 그 영화제)이 있다. 뉴욕은 자고로 다양한 독립영화의 동네. 그런데 트라이베카는 남들 추수한 밭에서 쓸만한 걸 건져야 하는 신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들은 있다. 특히 디지털 시스템의 혁명으로 넘쳐나게된 다큐멘터리가 트라이베카의 대표 섹션으로 자리잡고 있다.(두 번의 체험만으로 경향을 꿰버렸다는) 

이런저런 초점을 더해서 M잡지에 기사를 송고할 예정이었으나 어떤 사정으로 못하게 되서 블로깅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큰 영화제는 아니지만 뉴욕 '시네필'들의 특성을 엿보는 체험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시네필'이라는 단어는 트라이베카 기사에서 처음 봤다. 여기선 누구도 이런 단어를 쓰지 않앗! 시네필 되기도 힘든 게 영화 티켓값이 무려 13달러라서.-_- 그나마 거대한 극장 체인은 오전 할인이라도 해주는데 예술영화는 그런 거 없이 12~13달러. 영화제도 뭐 별반 다르지 않다. 

프레스 등록을 하고 나면 개막 전 약 2주 정도 열리는 시사회에 참석할 수 있다. 대충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여준다는 게 미덕.
 영화제 개막 후 관객들 틈에 껴서 처음 본 영화는 서극의 <Detective Dee and the mystery of the phantom flame>. 대체 무슨 영화인가 했더니 작년 10월 한국에서 이미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로 개봉. 미국에서 살면 아시아 유행에 뒤떨어지는구나. 슬프다.
이 영화가 영화제에 오게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좀 있는데 이건 먼훗날 이야기할 수 있을까나. 왜냐면 이런 순도 100퍼센트 오락영화는 트라이베카 취향과는 미묘하게 달라서 말이다. 스노비한 뉴욕커들은 영화 보고 의견을 나누거나 있는 지식 자랑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건 좀 PG-13 영화같은 느낌? 

생각보다 작았던 상영관. 의외로 매진

상영 전에는 영화퀴즈 영상물과 스폰서 광고가 번갈아가며 영사된다. 퇴근하고 온 게 분명해보이는 여러 어른들. 내 앞에 저 머리묶은 언니는 영화 보는 내내 10분마다 남친이랑 뽀뽀질. 그러다가 막판에 여자 경호원 죽을 때 애처로운 음악이 나오자 웃음을 터뜨림. 그때 웃은 분들이 한둘은 아니었지만. 

관객상 투표 용지. 2만5천 달러의 상금!

그런데 서극 아저씨는 이 정도 돈 필요 없으시잖아요? 라기보다는 영화가 진짜 3점. 작년에 <불신지옥>은 그래도 감독님과 인사하고 5점 줬는데 상금은 못 받았다. 중국에선 CG를 CG처럼 보이게 찍는 게 대세인가란 생각을 해본다. <적벽대전>과 <캐리비안의 해적>과 <촉산> 등등을 짬뽕한 거 같았어. 그래도 홍금보가 짰다는 무술을 좋았다. 리빙빙의 채찍 휘두르는 거 훕!

트라이베카 영화제의 고유색은 핑크입니다


 거의 판타스틱영화제에 가까운 뉴욕아시아영화제나, 칸과 베니스 영화들 다 긁어오는 뉴욕영화제에 더 알찬 영화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런데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도 건질 영화들은 있다. '시네필' 정도는 아니고 설렁설렁 마실 나가서 영화 보고 대화 거리 얻어 오는 수준이랄까. 그래도 돈은 제일 많아서 광고도 엄청 해대고 스타들 불러다가 파티도 열어 댄다. 이벤트도 많고 이래저래 요란하다.
한국에서 만날 영화제의 발전이랄까 위기랄까 정체성이랄까 그런 주제 가지고 고민하다가 이런 야심 없는 영화제를 경험하고 있노라니, 내가 속한 세계(영화세계)는 세상이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주는 영역이 아닌 것 같아.

to be continued.(보장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