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험

팀 버튼 전시회 in MOMA

marsgirrrl 2010. 4. 21. 08:33

금요일 공짜 티켓의 날. MOMA에서 열리는 팀 버튼 전시회 재도전에 나섰다. 오후 4시부터 공짜 티켓을 나눠주므로 현명한 빈민이라면 한 시간 전부터 앞에서 대기하는 게 당연. 팀 버튼 전시회 같은 특별전은 티켓이 제한되기 때문에 줄 앞쪽에 서지 못하면 거의 볼 수 없다. 30분씩 관람 제한 시간이 있지만, 거의 체크를 안 하므로 꼭 지킬 필요는 없다.(그러나 대개 1시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3시에 도착하니 앞줄이 이만큼.


4시 다 되어 뒤를 돌아보니 이만큼. 본능적으로 흐믓.

3시 반 정도가 되면 무언가를 챙겨 먹어둬야 한다. 문닫는 8시까지 4시간 동안 내부에서 돌아다닐 체력을 비축해야 하기 때문. 1시간 동안 계단에 앉아 기다렸더니 세상의 온갖 남녀노소들을 구경한 기분. MOMA 앞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사람 전시회'랄까.

드디어 티켓 겟! 맨 위에 써 있는 찬란한 저 이름!

로비에 들어가면 거대하게 서 있는 '스테인 보이'의 한 캐릭터. 모두들 들어오자마자 기념촬영으로 분주하다. 금요일 공짜 티켓의 단점은 전세계의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므로 사람이 많다는 것! 그래도 애들 방학 때 열리는 한가람 미술관 전시 보러 가는 것보다 나음.

전시장 앞쪽에 만들어 놓은 팀 버튼 연대기 벽. 관광객 포토콜 장소.


그러나 사진은 여기까지. 특별전은 사진 촬영이 안 될 때가 많다. 팀 버튼 전시회도 마찬가지.

저 귀여운 입구를 찍어보려고 했으나 바로 뒤에서 '노 포토'라는 소리가 들려옮.


모마 사이트에서 주워온 이미지.


'스테인 보이' 단편 에피소드들이 상영되는 LED 복도를 지나면 팀 버튼이 이번 전시회를 위해 만든 특별한 탑이 하나 등장. 그리고 훤한 전시실로 들어가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려온 각종 스케치들이 벽을 꽉꽉 채우고 있다. 마치 팀 버튼네 집에 초대받은 기분이랄까. 집에 걸어놓듯 액자들을 오밀조밀하게 걸어놓았다. 어렸을 때 동네 소방서 포스터 컨테스트에서 1등 먹은 작품, 프랑켄슈타인&드라큘라&몬스터&외계인 이미지들을 몬드리안 그림처럼 배치해 놓은 판넬, 수업 시간에 낙서로 그린 듯한 만화 등등을 보며 팀 버튼의 출발점을 제대로 되새겨 볼 수 있다. 하물며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신문 광고 스크랩 해놓은 것까지 걸려 있었다.
캘리포니아 예술 대학교(Calarts) 시절의 작품들은 초기 감독 시절의 형태와 닮아 있다.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각종 캐릭터들이 영화 쪽으로 오면서 폭주,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대학교 시절에 찍은 단편들을 지나, 영화 시절로 들어오면 영화 캐릭터 구상 스케치 및 실제로 사용되었던 피겨들이 전시된다. <크리스마스 악몽>의 해골 잭의 다양한 머리를 보고 나서 뒤를 샥 돌았더니 실물 크기의 가위손 동상이 서 있는 게 아닌가요! 롱 타임 노 씨 가위손씨 동상은 작고하신 특수효과 장인 스탠 윈스턴이 만든 작품. 이외에 배트맨 가면들, 캣우먼 의상, 에드우드 앙고라 스웨터, 슬리피 할로우 망또 등이 막판 전시를 장식. 그런데 최신 필모그라피로 올수록 전시 자료들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공장 앞에서 노래부르는 인형(불탄 채로 전시)이 전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모자장수 캐릭터 습작을 간신히 찾았다. 저작권 문제인지, 아니면 이제는 젊었을 때만큼 그려대지 않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고.

말로만 들으면 섭섭하니 맛보기 사이트에 잠깐 입장.
MOMA Tim Burton Exhibiton

평생 한길을 걸어온 사람의 흔적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었다. 무언가를 그리면서 창조해내기 위해 노력했던 젊은 시절의 방대한 스케치는 양이 많아 더 감동이었다. 걸려있는 것들 이외에 몇 배의 그림을 그려왔을 터다. 만화와 B무비에 대한 질긴 애정으로 만들어진 한 시대의 캐릭터들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아마 나중에 누군가 팀 버튼 박물관을 개장할 지도 모를 일.

(이전 블로그에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1990년대 말 <키노> 모니터 기자 모임에 처음 갔다가 '좋아하는 감독'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팀 버튼'이라고 말하자 갑자기 분위기가 썰렁해졌다.(데이비드 린치와 코엔 형제도 말했었나? 기억이 안 난다) 당시 영화 마니아라면 장 뤽 고다르나 키에슬로브스키나 타르코프스키같은 '스키류' 감독들 정도는 읊어줘야 하는 것이었다. 뜨고 있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고 말했으면 안목을 칭찬받았을까? 아무튼 호부호형 못하는 겉멋의 시대였으므로.
그 일을 기억할 때마다 '내가 정말 팀 버튼을 좋아하나' 아리송했는데 전시회를 돌고 나니 정말 좋아했나 싶더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노망나서 안타깝지만, 뭐, 앞으로도 새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는 '의리상' 해드리겠음.

그러고 보니 올해 이상하게도 팀 버튼에게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3D 컴백에 성공했고(그러나 팀, 나는 당신의 3D 반댈세), 칸영화제 심사위원장도 맡았다. MOMA에서는 전세계 관람객들이 팀 버튼의 역사를 보고 가고 있다. 그리고 한창 브로드웨이에서 <아담스 패밀리> 뮤지컬이 화제인 가운데, 다음 작품이 <아담스 패밀리>로 정해졌다. 이미 존재하는 캐릭터라이징에 도전할 경우 번번히 안 좋은 영화가 나오는데(찰리와 초콜릿 공장 제외) <아담스 패밀리> 또한 그런 영화이고 누가 봐도 너무 빤한 조합이여서 걱정이 된다. 팀 버튼 영화 인생의 또 다른 단계가 진행 중인 듯하다. 다시 한 번 독창적인 불순한 캐릭터들을 보고 싶으나, 그건 팬의 욕심일 뿐.

+ 나뭉씨, 팀 버튼 전시회는 다음 주 월요일까지인데 진정 뉴욕 올 생각입니까?
+ 사실 그 뒤로 봤던 두 전시회가 더 충격적이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은 그의 역마살 생애를 체감하게 해주는 특별 전시회. 한국에서 몇 점 안 되는 사진으로 언젠가 전시했었던 기억이.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노비치 퍼포먼스는 뉴스에도 등장. 발가벗고 특정한 자세로 하루 종일 가만 있는 그녀의 과거 퍼포먼스를 다른 이들이 리바이벌. 마주 보고 있는 두 여자의 가슴 사이를 지나가는 경험을 했다. 다 벗고 벽에 매달려 있는 분이 제일 힘들어 보였다. 본인은 약 세 달 동안 MOMA에서 하루 종일 앉아 상대방 응시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계심. 근데, 이젠 안 벗으시는구나.

뭐 이러고 하루 종일 있는 것. 이것도 사실은 몰카. 촬영하면 안됩니다. 어글리 코리언이어서 죄송.


+ 신랑은 무언가를 인내하며 견뎌내는 그녀의 퍼포먼스를 보며 "예술이라기보다 차력같다"는 촌평을 내놓음. 젊은 시절 미인이었던 이 분이 남긴 영상들은 대개 소리지르거나 자해하거나 뭐 그런 것들. 스스로를 지루함에서 구원하는 것부터가 예술의 시작인지도.